설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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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그녀는 고려의 병사였던 이관(李寬)이라는 자의 딸인데, 이관은 평민이지만 몰락한 무관 가문의 후손이기도 했다. 거란의 2차 침입 당시 양규 휘하에서 종군했다. 거란의 성종이 직접 친정한 20만 대군과 싸우던 중 이관은 귀성(龜城)전투에서 전사 했는데, 죽은 후 그의 품 안에서 시 한수가 발견 된다.
이 땅에 침략하는 무리들이
천만 번 쳐들어와도
고려의 자식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네.
후손들도 나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리라 믿고
나는 긴 칼을 치켜세운 채
이 한 몸을 바쳐 내달릴 뿐이로다.
그의 품에서 발견된 시는 굴암산으로 피난 가 있던 이관의 부인인 홍씨와 10살배기 딸에게 전달 된다. 이 시를 받은 부인 홍씨는 자신의 딸에게 남자로 태어났다면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수 있었을 텐데라는 한탄을 하게 되고 그 말을 들은 딸은 무예를 익히기로 결심한다. 홍씨의 딸은 어머니에게 무예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고, 부인 홍씨는 친정아버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딸에게 무예를 알려주기 시작한다.
시간은 흘러 거란의 3번째 침입이 시작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이관의 딸은 남장을 한 후 귀주성 인근에 진을 치고 있던 상원수 강감찬의 부대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강감찬과 마주치게 되는데 군에 입대하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그녀에게 강감찬은 어려보이는데다 몸도 여려 "너의 뜻은 장하나, 나이가 차면 그 때 다시오라."며 거절한다. 이때 이관의 딸은 "나라를 위하는데 어찌 나이를 헤아리며 몸이 크고 작음을 가리겠나이까."라며 자신의 뜻을 강하게 전달한다. 결국 강감찬은 그녀를 받아주며 자신이 타고 다니던 백마 1필과, 창 한자루를 건네준다.[1]
이후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설죽화, 눈 속에 핀 푸른 대나무 꽃이라고 지었으며 강감찬을 따라서 거란군과 맞서 싸우게 된다. 그녀는 항상 고려군의 선봉에 서서 거란의 병사들을 물리쳤으며 이런 적극성 때문에 온 몸에 상처가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귀주 대첩때도 고려군의 선봉에 서서 적들의 목을 베었는데 적의 가슴에 창을 꽂아 넣는 순간 등 뒤에서 날라온 화살에 맞아 전사한다.
귀주 벌판에서의 대혈전이 끝난 후, 설죽화의 시체가 발견 되었는데 그때 그녀의 품에서 이관이 남긴 시가 나왔으며 이를 본 강감찬은 설죽화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음을 깨닫는다.
시간은 흘러 거란의 3번째 침입이 시작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이관의 딸은 남장을 한 후 귀주성 인근에 진을 치고 있던 상원수 강감찬의 부대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강감찬과 마주치게 되는데 군에 입대하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그녀에게 강감찬은 어려보이는데다 몸도 여려 "너의 뜻은 장하나, 나이가 차면 그 때 다시오라."며 거절한다. 이때 이관의 딸은 "나라를 위하는데 어찌 나이를 헤아리며 몸이 크고 작음을 가리겠나이까."라며 자신의 뜻을 강하게 전달한다. 결국 강감찬은 그녀를 받아주며 자신이 타고 다니던 백마 1필과, 창 한자루를 건네준다.[1]
이후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설죽화, 눈 속에 핀 푸른 대나무 꽃이라고 지었으며 강감찬을 따라서 거란군과 맞서 싸우게 된다. 그녀는 항상 고려군의 선봉에 서서 거란의 병사들을 물리쳤으며 이런 적극성 때문에 온 몸에 상처가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귀주 대첩때도 고려군의 선봉에 서서 적들의 목을 베었는데 적의 가슴에 창을 꽂아 넣는 순간 등 뒤에서 날라온 화살에 맞아 전사한다.
귀주 벌판에서의 대혈전이 끝난 후, 설죽화의 시체가 발견 되었는데 그때 그녀의 품에서 이관이 남긴 시가 나왔으며 이를 본 강감찬은 설죽화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음을 깨닫는다.
3. 대중문화 속의 설죽화 [편집]
4. 관련 문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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