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태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서승태(徐承台)
생몰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신진리
사망지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서승태는 1854년 8월 3일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신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6년 민종식 의병장이 의병을 이끌고 남포에서 홍주성을 향해 행진할 때 창고를 열어 군량미를 제공했다. 그리고 1908년 홍주향교의 도유사(都有司)로 재직하면서 광천 덕명학교를 설립해 57회에 걸쳐 졸업생을 배출하며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919년 3월 18일, 서승태는 홍천군 광천면에서 오인섭(吳仁燮), 이명종(李鳴鍾), 최응모(崔應模), 성인배(成仁培)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하고 기미독립선언서 500매를 등사해 주민들에게 배포했다. 그러나 사전에 이 계획이 발각되는 바람에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같은 해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엔 자택에서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다가 1921년 12월 3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서승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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