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룡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 서상룡(徐相龍) |
자 | 사필(士弼) |
호 | 라은(蘿隱) |
생몰 | |
본관 | |
사망지 |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의병장.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서상룡은 1852년 10월 14일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신성리에서 부친 서광순(徐光淳)과 모친 나주 임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기우만에게 학문을 배웠고, 1895년 11월에 안승우, 이춘영(李春永) 등이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유인석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제천에서 진용을 재편성할 때 참여해 종사로 활동했다.
유인석 의병대는 1896년 2월 충주성을 공략했지만 관군과 일본군의 합동 공격으로 패주했고, 이후 북상하면서 강원도 원주, 황해도 장산 등지에서 패했다. 이에 유인석은 간도로 피해 의병 활동을 재개하기로 결심하고 서간도 지역으로 망명했고, 서상룡은 그를 따라갔다. 이후 그는 유인석의 지시에 따라 베이징에 있던 위안스카이를 찾아가 군사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고, 3년 만에 귀국한 뒤 고향에 은거했다가 1944년 10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서상룡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2년 화순군 도곡면 성산사 건너편 산록에 매장되었던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이장했다.
유인석 의병대는 1896년 2월 충주성을 공략했지만 관군과 일본군의 합동 공격으로 패주했고, 이후 북상하면서 강원도 원주, 황해도 장산 등지에서 패했다. 이에 유인석은 간도로 피해 의병 활동을 재개하기로 결심하고 서간도 지역으로 망명했고, 서상룡은 그를 따라갔다. 이후 그는 유인석의 지시에 따라 베이징에 있던 위안스카이를 찾아가 군사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고, 3년 만에 귀국한 뒤 고향에 은거했다가 1944년 10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서상룡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2년 화순군 도곡면 성산사 건너편 산록에 매장되었던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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