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성은 서병희(徐炳熙)의 아들로[1], 1907년 부친이 경남 양산군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가담해 양산, 산청, 함안 등지에서 활동했다. 1907년 12월 경주 산내에서 창의한 윤정의(尹政義)와 제휴했으며, 1908년 5월 함안에서 창의한 박동의(朴東義)와 연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1908년 6월 13일 양산군 만세봉 부근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서두성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그러나 서병희의 후손들은 족보 등에 기록이 없음을 근거로 자신들의 조상이 아니라며 훈장 수령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 때 서병희 사후 3종질인 서정근(徐定根)이 양자로 입적된 사실이 드러났다.# 서두성이 서병희의 아들이었다면 서두성에게 양자를 입적했어야 말이 맞는 것. 이를 토대로 지역사학계에서는 서두성을 서병희의 자식이 아닌 가까운 친척이나 휘하 의병 중 한 명으로 보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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