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달수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 서달수(徐達洙) |
생몰 | |
사망지 | |
매장지 |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편집]
서달수는 1920년 4월 17일 경상북도 경주시 구 월성군 산내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8년 3월에 일본으로 유학가서 일본대학 정치과에 재학했다. 그러던 중 일본인 교사가 한인 학생들을 차별하고 재일 교포들이 일본 내에서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을 지켜보고 반감을 품었다. 그는 동교생 김덕중(金德中), 김홍구(金鴻九) 등과 함께 동지회(同志會)를 조직했다. 동지회는 표면상으로는 학술, 문예, 체육부를 두어 학술연구 단체로 위장했지만, 실제로는 도쿄에 채류하는 유학생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동지회의 활동이 일제 밀정에게 발각되고 말았고, 결국 서달수는 1941년 1월에 체포되어 국내로 이송되었다. 그는 그해 11월에 부신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77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받았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1992년 2월 24일에 사망했으며,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국립신암선열공원에 매장되었다.
그러나 동지회의 활동이 일제 밀정에게 발각되고 말았고, 결국 서달수는 1941년 1월에 체포되어 국내로 이송되었다. 그는 그해 11월에 부신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77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받았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1992년 2월 24일에 사망했으며,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국립신암선열공원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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