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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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조선시대에는 한성부(漢城府) 동부 숭신방(崇信坊)에 속했으며, 갑오개혁 때 한성부 동서(東署) 인창방(仁昌坊) 동소문외계(東小門外契) 월곡상리(月谷上里)라고 하였다. 1911년 경기도 경성부(京城府) 인창면(仁昌面) 상월곡리(上月谷里)로, 1914년 고양군 숭인면(崇仁面) 월곡리(月谷里)로 되었다. 1949년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상·하월곡리로 분리되었고, 1950년 지금의 동명으로 되었다.
이 지역은 동대문 밖을 나와서 성북역을 거쳐 원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으므로, 아침 일찍 동대문을 나선 길손이 마을에 이르면 점심때가 되어 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주막이 많았다. 경원선 철도가 놓이기 전까지도 주막거리가 형성되어 있었다.
화랑로를 따라 장위동으로 가는 고개를 마른대미고개라고 했는데, 이 고개를 넘으면 평지가 되므로, 고개가 바로 끝난다는 뜻으로 바로대미고개라고 하던 것이 음이 변하여 마른대미고개로 되었다.
다릿굴고개는 장위현(長位峴) 또는 우장현(雨藏峴)이라 했으며, 밤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 곳이라고 해서 밤나무골 또는 밤골이라고도 불렸다. 그 이웃에는 배나무가 많아 배나무골, 배골이라는 마을 이름이 있었으나 지금은 주택지로 바뀌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지역은 동대문 밖을 나와서 성북역을 거쳐 원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으므로, 아침 일찍 동대문을 나선 길손이 마을에 이르면 점심때가 되어 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주막이 많았다. 경원선 철도가 놓이기 전까지도 주막거리가 형성되어 있었다.
화랑로를 따라 장위동으로 가는 고개를 마른대미고개라고 했는데, 이 고개를 넘으면 평지가 되므로, 고개가 바로 끝난다는 뜻으로 바로대미고개라고 하던 것이 음이 변하여 마른대미고개로 되었다.
다릿굴고개는 장위현(長位峴) 또는 우장현(雨藏峴)이라 했으며, 밤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 곳이라고 해서 밤나무골 또는 밤골이라고도 불렸다. 그 이웃에는 배나무가 많아 배나무골, 배골이라는 마을 이름이 있었으나 지금은 주택지로 바뀌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3. 주요 시설 [편집]
3.1. 기관 [편집]
- 성북정보도서관
3.2. 주거 [편집]
- 동아건설산업 성북동아에코빌아파트- 2002년 10월 입주.
- 상월곡우남아파트-1994년 12월 입주.
3.3. 교육 [편집]
3.3.1. 초등학교 [편집]
- 서울월곡초등학교
3.3.2. 중학교 [편집]
3.3.3. 대학교 [편집]
4. 교통 [편집]
4.1. 버스 [편집]
4.1.1. 간선 [편집]
4.1.2. 지선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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