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2010년 기준 13만 여명이며, 그 중 대부분인 10만여 명이
칭하이성에 거주한다.
간쑤성에 1만 3천여명 그리고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4천여 명이 거주한다. 민족 자치 행정 구역으로는 칭하이성
하이둥시의 쉰화 살라르족 자치현(循化撒拉族自治县)과 간쑤성 내 지스산
보안족·
동향족·살라르족 자치현(积石山保安族东乡族撒拉族自治县)이 있다.
서돌궐 제국의 살루르 족에 기원을 둔 부족으로, 1370년대 중앙아시아
차가타이 칸국이
티무르 제국의 침공으로 멸망할 때,
사마르칸트 지역의
튀르크인 일부가 명나라에 귀순한 것이 그 시초이다. 살라르족들은 조세와 군역을 제공하는 대신에 자치를 누렸으며,
둥샹족,
다우르족과 마찬가지로
둔전을 경작하였다. 당시 명나라 변경 지역이었던
간쑤성 남부 변경(오늘날의
칭하이성 동부)에 주둔하면서 티베트계 부족들을 견제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들은 명나라 치세 동안 17차례, 청나라 치세 동안 5차례 군사 작전에 동원되었다.
튀르크어족의
살라르어를 쓰며, 과거에는
아랍 문자로 표기했으나 현재는
로마자가 사용된다.
칭하이성의 살라르족은 티베트어와 표준 중국어 또한 할 줄 안다. 차가타이 계통의
위구르인과는 달리 정 반대방향에 거주하는
아제르바이잔인,
터키인과 같은
오우즈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은근히
투르크멘어와 비슷하다. 터키인에게 들려줘도 중국스러운 억양(...)이 심하지 않으면 간단한 내용은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다.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는다.
하나피파에 속한다. 같은 이슬람교를 믿는
회족과 풍속이 유사하다. 후이족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통혼했기 때문에 18세기 후이족들간의 종파 분쟁으로 유혈 충돌이 발생했을 때 살라르족들도 여기 엮여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한다.
전통적으로 살라르족들은
우즈베크인과 마찬가지로 주로 농업에 종사하며, 수렵과 목축을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