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지스톤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브리지스톤 | |
명칭 | 株式会社ブリヂストン / Bridgestone Corporation |
업종 | 타이어 전문 |
설립일 | |
창립자 | 이시바시 쇼지로 |
국가 | |
대표이사 | 회장 쓰야 마사아키 |
기업 규모 | |
슬로건 | 당신의 여정은, 우리의 열정 (Your Journey, Our Passion) |
시가총액 | 3조 8,636억 99백만 엔(2018년) |
본사 | 도쿄도 주오구 교바시 3초메 1번 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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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창업자인 이시바시 쇼지로는 아버지로부터 재봉 회사를 물려받아 1918년 닛폰다비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이것이 브리지스톤의 모태가 되었다. 당시 고무바닥 버선인 지카다비는 고무 바닥이 빨리 떨어지는 등 문제가 많았지만, 지카다비 개량으로 고무 생산 기술의 노하우를 습득하는 데 성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자동차 시장이 커지면서 타이어 산업에 진출하였다.
1931년 이시바시 쇼지로는 브리지스톤 타이어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타이어 시장에 진출하였다. 사명인 브리지스톤은 그의 성인 이시바시(石橋)를 영문으로 풀이한 것. 당초에는 스톤브리지돌다리였으나 어감을 고려하여 브리지스톤다리돌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이미 던롭, 미쉐린 등 쟁쟁한 업체가 자리잡고 있었던 타이어 시장에 후발주자가 들어오긴 어려웠는데, 제품이 결함이 있을 경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교환하는 품질보증제라는 묘수를 고안해 시장에 안착하는 데 성공하였다.
1942년 당시 귀축영미 때려잡자는 일제의 분위기에 의해 '일본타이어주식회사'란 이름으로 바꾸었지만 패전 후 다시 원래 이름로 돌아갔다. 도쿄 대공습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되었지만 피해를 입은건 본사뿐이었고, 다행히 공장은 큐슈, 구루메시에 있던지라 멀쩡해서 다른 기업에 비하면 종전후 우월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1946년에는 자전거 분야에도 진출하여 1949년 브리지스톤 사이클 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1950년에는 굳이어와 기술 제휴를 하고 타이어를 생산하게 되었는데, 굳이어와 기술 제휴를 한 계기가 당시 인도네시아 자바에 있던 굳이어의 공장을 일본군이 점령하면서 운영권을 위임하게 되었고, 이시바시 쇼지로는 '패전하면 완전한 상태로 굳이어 사에 돌려줘야 한다'는 일념하에 오히려 굳이어가 운영하기 전보다 더 좋은 상태(!)로 굳이어에 넘겨줬기 때문이다.
1931년 이시바시 쇼지로는 브리지스톤 타이어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타이어 시장에 진출하였다. 사명인 브리지스톤은 그의 성인 이시바시(石橋)를 영문으로 풀이한 것. 당초에는 스톤브리지
하지만 이미 던롭, 미쉐린 등 쟁쟁한 업체가 자리잡고 있었던 타이어 시장에 후발주자가 들어오긴 어려웠는데, 제품이 결함이 있을 경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교환하는 품질보증제라는 묘수를 고안해 시장에 안착하는 데 성공하였다.
1942년 당시 귀축영미 때려잡자는 일제의 분위기에 의해 '일본타이어주식회사'란 이름으로 바꾸었지만 패전 후 다시 원래 이름로 돌아갔다. 도쿄 대공습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되었지만 피해를 입은건 본사뿐이었고, 다행히 공장은 큐슈, 구루메시에 있던지라 멀쩡해서 다른 기업에 비하면 종전후 우월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1946년에는 자전거 분야에도 진출하여 1949년 브리지스톤 사이클 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1950년에는 굳이어와 기술 제휴를 하고 타이어를 생산하게 되었는데, 굳이어와 기술 제휴를 한 계기가 당시 인도네시아 자바에 있던 굳이어의 공장을 일본군이 점령하면서 운영권을 위임하게 되었고, 이시바시 쇼지로는 '패전하면 완전한 상태로 굳이어 사에 돌려줘야 한다'는 일념하에 오히려 굳이어가 운영하기 전보다 더 좋은 상태(!)로 굳이어에 넘겨줬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적이 강대국이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는 예측하기 어렵다. 만약 전쟁이 실패로 끝나 철수하는 경우에는 군이 분노에 차서 어떤 명령을 내릴지도 모르지만, 공장설비를 완전한 상태 그대로 굿이어에게 돌려줄 것"[1]
미국을 시찰하면서 일본의 타이어 생산 기술이 미국보다 한참 뒤쳐져 있다는 걸 느낀 이시바시는 레이온과 나일론 타이어코드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후 사업 다각화를 도모하여 고무로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타이어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고무로 골프공을 제작하게 되어 골프 시장에도 진출하였다.
1988년 미국의 타이어 업체인 파이어스톤을 인수하게 되면서 서구권에 다수의 생산공장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1990년대에는 포뮬러 1에 진출하게 된다. 1997년부터 2010년까지 F1에 타이어를 공급하면서 세계 각지에 있는 생산 공장 덕분에 높은 점유율로 세계 최대의 타이어 회사가 될 수 있었다.
시판용 타이어는 대체로 사이드월이 강해 스티어링 응답성과 고속 안정감이 좋지만 젖은 노면 성능이 떨어지는 편이다. 자사의 포텐자 RE003이 국내 와인딩 매니아들 사이에 가장 유명하고, 출시 당시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3. 사업분야 [편집]
3.1. 타이어 [편집]
3.2. 주요 브랜드 [편집]
- 포텐자[2] - 퍼포먼스
- 투란자 - 투어링
- 에코피아 - 친환경
- 드라이브 가드 - 런플랫
- 블리작 - 겨울용
- 알렌자 - 고성능 프리미엄 SUV용 타이어
- 듀얼러 - 고성능 스포츠 SUV용 타이어
- 듀라비스 - 경형/중형 트럭용
- 넥스트리 - 저연비 스탠다드
3.3. 자전거 [편집]
4. 기타 [편집]
일제강점기때 조선다이야란 이름으로 들어오긴 했으나 패전과 함께 철수했고, 남은 적산 시설은 한국타이어의 전신이 되었다. 브리지스톤이 다시 한국에 들어온 건 2001년에 들어서이다.
창업자 이시바시 쇼지로의 개인 컬렉션을 전시하는 브리지스톤 미술관이 1952년에 건립되어 현재까지 운영되어 왔으나, 재건축 관련으로 현재 휴관 중이며 2019년 가을에 다시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위치는 도쿄역 인근에 있다. 이 미술관에는 모네, 르누아르, 세잔 등 인상파에서 포스트 인상파 작품을 중심으로 마티스, 피카소, 폴록 등 20세기 서양 회화와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 아오키 시게루(靑目繁), 야스이 소타로(安井曾太郞) 등의 일본 근대 서양화를 소장해 폭넓은 전시를 하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창업주 이시바시 쇼지로의 외손자이다. 하토야마 이치로 총리의 아들 하토야마 이이치로와 이시바시 쇼지로의 딸 이시바시 야스코가 결혼 후 낳은 아들이다.
삿포로 시영 지하철에 고무차륜을 공급한다.
창업자 이시바시 쇼지로의 개인 컬렉션을 전시하는 브리지스톤 미술관이 1952년에 건립되어 현재까지 운영되어 왔으나, 재건축 관련으로 현재 휴관 중이며 2019년 가을에 다시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위치는 도쿄역 인근에 있다. 이 미술관에는 모네, 르누아르, 세잔 등 인상파에서 포스트 인상파 작품을 중심으로 마티스, 피카소, 폴록 등 20세기 서양 회화와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 아오키 시게루(靑目繁), 야스이 소타로(安井曾太郞) 등의 일본 근대 서양화를 소장해 폭넓은 전시를 하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창업주 이시바시 쇼지로의 외손자이다. 하토야마 이치로 총리의 아들 하토야마 이이치로와 이시바시 쇼지로의 딸 이시바시 야스코가 결혼 후 낳은 아들이다.
삿포로 시영 지하철에 고무차륜을 공급한다.
[1] https://www.bridgestone.co.jp/corporate/history/story/03_02.html[2] 가장 유명하다. F1에 진출했을때에도 이 브랜드의 이름을 썼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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