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휴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郛休
(207 ~ 269)
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인물. 자는 공수(孔修).
동래군 곡성현 사람으로 총명하고 사리에 밝았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의 우애가 많고 어질었다고 한다.
약관에 벼슬을 시작하고 상계연이 되었다가 주에 벽소되어 치중별가가 되었다가 수재로 천거되었지만 취임하지 않았으며, 공부의 부름을 받아 상국연이 되었고 촉 정벌 때 장군사마가 되었다.
옮겨서 독군량치서시어사가 되었다가 신성태수로 옮겼고 아들은 기도위가 되었으며, 명위장군이 더해졌다가 강하태수로 옮겼고 아들은 관중후의 작위를 받았다. 오나라가 양양을 포위하자 7천으로 3만을 무찔렀고 남향태수로 옮겼다가 269년 8월에 63세로 사망했다.
그의 비석에 적힌 바에 따르면 당시 남향군의 병적은 병사 3천, 기병 3백, 참전 2인, 기독 1인, 부곡독 8인, 부곡장 34인이다.
당(唐)대 이상적 인간형이라는 논문에서는 당대 이전까지의 이상적 인간형의 예시로 초민, 곡랑, 찬보자, 찬룡안, 황보인, 도충, 오고려, 장원, 이헌 등과 함께 언급된다.
(207 ~ 269)
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인물. 자는 공수(孔修).
동래군 곡성현 사람으로 총명하고 사리에 밝았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의 우애가 많고 어질었다고 한다.
약관에 벼슬을 시작하고 상계연이 되었다가 주에 벽소되어 치중별가가 되었다가 수재로 천거되었지만 취임하지 않았으며, 공부의 부름을 받아 상국연이 되었고 촉 정벌 때 장군사마가 되었다.
옮겨서 독군량치서시어사가 되었다가 신성태수로 옮겼고 아들은 기도위가 되었으며, 명위장군이 더해졌다가 강하태수로 옮겼고 아들은 관중후의 작위를 받았다. 오나라가 양양을 포위하자 7천으로 3만을 무찔렀고 남향태수로 옮겼다가 269년 8월에 63세로 사망했다.
그의 비석에 적힌 바에 따르면 당시 남향군의 병적은 병사 3천, 기병 3백, 참전 2인, 기독 1인, 부곡독 8인, 부곡장 34인이다.
당(唐)대 이상적 인간형이라는 논문에서는 당대 이전까지의 이상적 인간형의 예시로 초민, 곡랑, 찬보자, 찬룡안, 황보인, 도충, 오고려, 장원, 이헌 등과 함께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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