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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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개동 (제주) | ||||
1. 소개 [편집]
2. 지리 [편집]
북쪽으로 삼양동(법정동으로 보면 도련동)과 접해 있으며, 서쪽으론 아라동(법정동은 월평동), 동쪽과 남쪽으론 조천읍과 닿아 있다.
봉개동은 물장오리오름[3]의 지맥으로 22개의 오름을 아우르며 크게 봉아오름(봉개 본동), 명도암[4], 웃므드네(용강동), 고는새(서회천), 새미(동회천) 등 5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졌다.[출처] 주요 도로로는 먼저 번영로[6]가 있는데 제주시 시내[7]와 표선면을 이어주는 간선도로 역할을 하며, 봉개동에서도 이 도로를 중심으로 상가 건물들이 분포해 있다.
두 번째로 아봉로란 도로가 있는데, 이 도로는 봉개동과 아라동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세 번째로 명림로는 번영로에서 4·3평화공원, 절물휴양림을 지나 사려니숲길이 있는 비자림로를 이어준다. 2019년 10월 10일엔 애조로 봉개구간이 개통되면서 애조로가 번영로를 사이에 두고 명림로와 만나게 되면서 사거리를 이루게 됐다. 최근엔 대단지 아파트 신축 등으로 제주시내 동부권과 마찬가지로 도시화가 진전되고 있다.
봉개동은 물장오리오름[3]의 지맥으로 22개의 오름을 아우르며 크게 봉아오름(봉개 본동), 명도암[4], 웃므드네(용강동), 고는새(서회천), 새미(동회천) 등 5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졌다.[출처] 주요 도로로는 먼저 번영로[6]가 있는데 제주시 시내[7]와 표선면을 이어주는 간선도로 역할을 하며, 봉개동에서도 이 도로를 중심으로 상가 건물들이 분포해 있다.
두 번째로 아봉로란 도로가 있는데, 이 도로는 봉개동과 아라동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세 번째로 명림로는 번영로에서 4·3평화공원, 절물휴양림을 지나 사려니숲길이 있는 비자림로를 이어준다. 2019년 10월 10일엔 애조로 봉개구간이 개통되면서 애조로가 번영로를 사이에 두고 명림로와 만나게 되면서 사거리를 이루게 됐다. 최근엔 대단지 아파트 신축 등으로 제주시내 동부권과 마찬가지로 도시화가 진전되고 있다.
3. 주요 시설 [편집]
교육시설로 봉개초등학교, 대기고등학교가 있으며 주요 볼거리로 4·3평화공원, 절물휴양림, 노루생태공원, 참살이체험휴양마을, 유스호스텔, 어린이교통공원 등이 있다.
또한 제주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159호)와 제주마(천연기념물 제347호) 육성지도 봉개동에 있다.
봉개동엔 쓰레기 매립지가 있었지만, 포화 문제로 2019년 하반기부터 구좌읍에 새로운 매립지가 건설됐다. 또한 화북공업단지가 이곳의 법정동인 회천동으로 이전한다. 물론, 이전까진 반발이 극심했다.
또한 제주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159호)와 제주마(천연기념물 제347호) 육성지도 봉개동에 있다.
봉개동엔 쓰레기 매립지가 있었지만, 포화 문제로 2019년 하반기부터 구좌읍에 새로운 매립지가 건설됐다. 또한 화북공업단지가 이곳의 법정동인 회천동으로 이전한다. 물론, 이전까진 반발이 극심했다.
4. 여담 [편집]
일제강점기 땐 일본군 96사단 예하의 293연대본부가 주둔해 있었다고 한다. 주변 오름엔 대규모 갱도진지 등 군사시설을 구축했다.
제주 4.3 사건 발생 1년 뒤인 1949년 2월에 봉개리 마을을 초토화시킨 제2연대장 함병선과 작전참모 김명이 마을 명칭을 자신들의 이름을 딴 함명리(咸明里)로 개명시켰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이를 치욕으로 여겨 명칭을 다시 봉개리로 바꿨다고 한다.
그리고 제주 4·3평화공원에 놓인 상징조형물 중에 아이를 끌어안고 죽어가는 여인을 형상화한 동상이 있는데 봉개동(당시 봉개리)에서 2연대 토벌작전이 벌어진 1949년 1월 6일, 군인에 쫓기다 젖먹이 딸을 업은 채 총에 맞아 숨진 봉개동 변병생 모녀를 모티브로 한 것이며 조형물의 이름은 비설(飛雪)이라 부른다고 한다.[출처]
제주 4.3 사건 발생 1년 뒤인 1949년 2월에 봉개리 마을을 초토화시킨 제2연대장 함병선과 작전참모 김명이 마을 명칭을 자신들의 이름을 딴 함명리(咸明里)로 개명시켰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이를 치욕으로 여겨 명칭을 다시 봉개리로 바꿨다고 한다.
그리고 제주 4·3평화공원에 놓인 상징조형물 중에 아이를 끌어안고 죽어가는 여인을 형상화한 동상이 있는데 봉개동(당시 봉개리)에서 2연대 토벌작전이 벌어진 1949년 1월 6일, 군인에 쫓기다 젖먹이 딸을 업은 채 총에 맞아 숨진 봉개동 변병생 모녀를 모티브로 한 것이며 조형물의 이름은 비설(飛雪)이라 부른다고 한다.[출처]
5. 관련문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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