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동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일제의 잔재 루머 [편집]
'본동'은 이미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꽤 써오던 특칭이며, 그 당시 그 의미를 살려 써온 것이다.
2016년 말에 김포시가 김포1, 2동의 동명 변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본동'이라는 명칭 사용에 제동이 걸리는 해프닝이 있었다. 한 지역지가 '일제가 주로 일본인이 사는 지역과 학교에 본(本), 중앙(中央) 등의 명칭을 사용했으며, 본동이라는 명칭 역시 조선인 차별을 위해 일본인 거류지에 붙이던 혼마치(本町)라는 일제식 지명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낸 것.
김포시 측은 국립국어원에 해당 명칭에 대해 검토를 요청한 결과,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의 고서에도 등장하는 표현이라 일제 잔재로 볼 수는 없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기사[2] 그러자 해당 지역지에서는 「인천지명고」 등의 향토연구서를 근거로 들어 '우리나라 여러 도시에 있는 본동이라는 지명이 혼마치를 우리 식으로 고친 것이다'라며 반박하는 기사를 내보낸다. 결국 2017년 4월 18일자로 김포1, 2동의 명칭이 각각 김포본동과 장기본동으로 확정 및 변경되어 지역지의 해석보다 김포시와 국립국어원 측의 해석에 좀 더 무게가 실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해당 지역지는 '김포시가 이훈익[3]이 저술한 「인천지명고」에 본동이 혼마치에서 유래했다는 내용은 없으며, 그의 아들인 소설가 이원규 씨가 지역신문에 기고한 동명의 연재물에 포함된 내용이라고 알려왔다'라는 내용의 정정보도문을 게재한다.
동작구 본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에는 동작구의 본동에 대한 유래가 설명되어 있는데, 그에 따르면 '본동은 조선시대부터 불린 부락의 이름이며 일제가 과천군 하북면의 본동(本洞)과 상가차산리(上加次山里), 하가차산리(下加次山里)를 합해 본동리라고 칭했는데 이것이 후에 본동이 되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참고[4]
2016년 말에 김포시가 김포1, 2동의 동명 변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본동'이라는 명칭 사용에 제동이 걸리는 해프닝이 있었다. 한 지역지가 '일제가 주로 일본인이 사는 지역과 학교에 본(本), 중앙(中央) 등의 명칭을 사용했으며, 본동이라는 명칭 역시 조선인 차별을 위해 일본인 거류지에 붙이던 혼마치(本町)라는 일제식 지명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낸 것.
김포시 측은 국립국어원에 해당 명칭에 대해 검토를 요청한 결과,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의 고서에도 등장하는 표현이라 일제 잔재로 볼 수는 없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기사[2] 그러자 해당 지역지에서는 「인천지명고」 등의 향토연구서를 근거로 들어 '우리나라 여러 도시에 있는 본동이라는 지명이 혼마치를 우리 식으로 고친 것이다'라며 반박하는 기사를 내보낸다. 결국 2017년 4월 18일자로 김포1, 2동의 명칭이 각각 김포본동과 장기본동으로 확정 및 변경되어 지역지의 해석보다 김포시와 국립국어원 측의 해석에 좀 더 무게가 실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해당 지역지는 '김포시가 이훈익[3]이 저술한 「인천지명고」에 본동이 혼마치에서 유래했다는 내용은 없으며, 그의 아들인 소설가 이원규 씨가 지역신문에 기고한 동명의 연재물에 포함된 내용이라고 알려왔다'라는 내용의 정정보도문을 게재한다.
동작구 본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에는 동작구의 본동에 대한 유래가 설명되어 있는데, 그에 따르면 '본동은 조선시대부터 불린 부락의 이름이며 일제가 과천군 하북면의 본동(本洞)과 상가차산리(上加次山里), 하가차산리(下加次山里)를 합해 본동리라고 칭했는데 이것이 후에 본동이 되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참고[4]
3. 목록 [편집]
대한민국에서 '본동'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곳은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과거부터 쓰던 것이 아니라 기존 지역과의 구분을 위해 '본동'이라는 명칭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이 문서에서는 '본동'이라는 명칭이 정식으로 행정구역의 명칭으로 쓰이거나 예로부터 자연부락의 이름으로써 기능한 경우에 한정하여 서술한다.
3.1. 법정동 [편집]
3.2. 행정동 [편집]
3.2.1. 옛 지명 [편집]
3.3. 부락의 이름으로 남아있는 경우 [편집]
4. 같이 보기 [편집]
5. 기타 동음이의어 [편집]
[1] 여담으로 국어사전에는 '본마을'도 하나의 표제어로 등재되어있다.[2] 다만 파장이 커지자 유영록 김포시장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본동이란 명칭은 안 썼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었다. 기사[3] 인천광역시의 향토사학자로 1916년 서구 연희동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지 인천시 공무원으로 근무했으며, 향토사학자로 활동하면서 1985년부터 인천향토문화연구소장에 임하여 「인천지명고」를 비롯해 「인천충효록」, 「인천지지」 등의 향토지를 집필하였다. 인천광역시문화원 창립준비 위원장으로 재임 중이던 2002년 2월 15일 서구청 청사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출처 1 출처 2[4] 한글학회에서 편찬한 한국지명총람에도 동일하게 기술되어있다.[5] 특이하게도 대구 달성군에는 지금도 '본리리'라는 지명을 지닌 곳이 세 군데나 있다(화원읍, 옥포읍, 논공읍). 경상북도~대구광역시를 제외한 일대에서는 현재 '본리리'라는 지명을 쓰는 곳이 없다.[6] 동 전체가 서울종합운동장과 잠실주공아파트 1단지(현 잠실엘스)에 해당되었다.[7] 통합 이전에는 동 전체가 잠실주공아파트 2단지(현 잠실 리센츠)에 해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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