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봉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변희봉 邊希峰 | |
본명 | 변인철(邊仁徹) |
국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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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사 | |
데뷔 | 1965년 MBC 성우 공채 2기 데뷔 61년차 |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조선대학교 법학과를 중퇴 후 서울에 올라와 처음에는 제약회사를 다녔다. 극단 산하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여러번 배우모집에 응시했으나 탈락하고 대신 1965년 MBC 성우 공채 2기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래서 그런지 목소리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이 당시에 데뷔한 성우 출신 중 탤런트로 전업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경우로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전운, 나문희, 정혜선, 김용림, 남일우, 한인수 등이 있다.
처음 활동할 당시에는 본명 변인철(邊仁徹)을 사용하다가 지금 쓰는 예명으로 바꾼 이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드라마에는 1970년 MBC TV의 반공드라마 《홍콩 101번지》에서 데뷔한 이후로, 《수사반장》 등에서 주로 범인 등 악역을 맡았다. 그러다가 1980년대 방영된 "조선왕조 500년"의 "설중매" (세조~성종) 편에서 유자광역을 맡으면서 배우로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 손금으로 점을 보면서 "~는 내 손안에 있소이다"라는 대사[2]를 했는데, 이는 당시 큰 유행어가 되었다. 덕분에 인생 최초로 광고까지 찍는다.[3]
또한 찬란한 여명에서 흥선 대원군 역을 맡았었는데, 여기에 출연할 무렵에는 목욕탕에 갈 때마다 "대원위대감~"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시달렸다는 뒷얘기도 있다. 풍운의 이순재와 함께 대원군 역에 가장 잘 어울렸던 배우로 사극 팬들에게 손꼽히는 편.
이후 계속 MBC 드라마에 개성있는 연기파 조연으로 출연하였다. 주로 맡은 배역은 악역이 많아서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줬다. 그러나 1990년대가 들어 트렌디 드라마가 대세가 되자 그와 같은 고참 연기파 배우들의 설자리가 없어졌고, 그는 출연을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자 낙향을 하려고 했다. 그 와중에도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된 공전의 히트 드라마 허준에서, 잠시 낙향해있던 시절에 부인이 치료를 받은 뒤 훗날 조정에서 허준의 큰 후원자가 되는 창녕 성대감 역할로 인상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2000년 봉준호 감독이 삼고초려하여 플란다스의 개에 출연했다. 처음엔 봉 감독의 출연 제의를 거절하려고 했으나, 봉 감독이 그동안의 출연작을 꿰면서 설득하여 결국 승락했다고. 플란다스의 개는 흥행면에서 실패했으나, 변희봉이 맡은 (보일라 김씨를 설명하는) 경비원 역은 매우 호평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 덕분에 제2의 전성기를 맞았기 때문에 인터뷰마다 봉 감독에 대해 자주 고맙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후에도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 자주 출연하였다. 살인의 추억에서 엉뚱한 용의자 백광호를 잡고 좋아하다가 끝내 잘리고 마는 구반장 역을 맡았는데, 송강호와 함께 논두렁 롱테이크 씬에서 연기 앙상블을 빛내며 굉장한 인상을 남겼다.[4] 특히 괴물에서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희봉' 역으로 출연하여 일생일대의 열연을 펼쳤다.[5] 마지막에 괴물과 맞닥뜨린 장면에서 장총을 겨누다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모든 걸 포기한 채 자식을 먼저 걱정하며 날아가던 장면은 정말 대단했다. 이렇게 봉준호 감독의 여러 작품에 출연한 이후 여기저기서 출연제의가 들어왔다. 괴물에서 한 열연으로 2006년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도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출연하여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는데, 고목나무에 꽃이 핀 기분이라고 소감을 표현했다. #
처음 활동할 당시에는 본명 변인철(邊仁徹)을 사용하다가 지금 쓰는 예명으로 바꾼 이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드라마에는 1970년 MBC TV의 반공드라마 《홍콩 101번지》에서 데뷔한 이후로, 《수사반장》 등에서 주로 범인 등 악역을 맡았다. 그러다가 1980년대 방영된 "조선왕조 500년"의 "설중매" (세조~성종) 편에서 유자광역을 맡으면서 배우로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 손금으로 점을 보면서 "~는 내 손안에 있소이다"라는 대사[2]를 했는데, 이는 당시 큰 유행어가 되었다. 덕분에 인생 최초로 광고까지 찍는다.[3]
또한 찬란한 여명에서 흥선 대원군 역을 맡았었는데, 여기에 출연할 무렵에는 목욕탕에 갈 때마다 "대원위대감~"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시달렸다는 뒷얘기도 있다. 풍운의 이순재와 함께 대원군 역에 가장 잘 어울렸던 배우로 사극 팬들에게 손꼽히는 편.
이후 계속 MBC 드라마에 개성있는 연기파 조연으로 출연하였다. 주로 맡은 배역은 악역이 많아서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줬다. 그러나 1990년대가 들어 트렌디 드라마가 대세가 되자 그와 같은 고참 연기파 배우들의 설자리가 없어졌고, 그는 출연을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자 낙향을 하려고 했다. 그 와중에도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된 공전의 히트 드라마 허준에서, 잠시 낙향해있던 시절에 부인이 치료를 받은 뒤 훗날 조정에서 허준의 큰 후원자가 되는 창녕 성대감 역할로 인상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2000년 봉준호 감독이 삼고초려하여 플란다스의 개에 출연했다. 처음엔 봉 감독의 출연 제의를 거절하려고 했으나, 봉 감독이 그동안의 출연작을 꿰면서 설득하여 결국 승락했다고. 플란다스의 개는 흥행면에서 실패했으나, 변희봉이 맡은 (보일라 김씨를 설명하는) 경비원 역은 매우 호평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 덕분에 제2의 전성기를 맞았기 때문에 인터뷰마다 봉 감독에 대해 자주 고맙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후에도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 자주 출연하였다. 살인의 추억에서 엉뚱한 용의자 백광호를 잡고 좋아하다가 끝내 잘리고 마는 구반장 역을 맡았는데, 송강호와 함께 논두렁 롱테이크 씬에서 연기 앙상블을 빛내며 굉장한 인상을 남겼다.[4] 특히 괴물에서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희봉' 역으로 출연하여 일생일대의 열연을 펼쳤다.[5] 마지막에 괴물과 맞닥뜨린 장면에서 장총을 겨누다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모든 걸 포기한 채 자식을 먼저 걱정하며 날아가던 장면은 정말 대단했다. 이렇게 봉준호 감독의 여러 작품에 출연한 이후 여기저기서 출연제의가 들어왔다. 괴물에서 한 열연으로 2006년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도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출연하여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는데, 고목나무에 꽃이 핀 기분이라고 소감을 표현했다. #
2.1. 드라마 [편집]
- 1987년 MBC 아름다운 밀회 - 장상국
- 1988년 MBC 우리 읍내- 남대천
- 1988년 MBC 한중록- 박문수
- 1989년 MBC 제5열 - 조금산
- 1991년 MBC 여명의 눈동자- 박춘금
- 1993년 MBC 걸어서 하늘까지- 구연수의 할아버지
- 1993년 SBS 한강 뻐꾸기- 한정균
- 1993년 KBS 청춘극장
- 1994년 KBS 한쪽 눈을 감아요
- 1995년 SBS 아스팔트 사나이- 교통부 장관
- 1995년 KBS 찬란한 여명- 흥선대원군
- 1998년 MBC 대왕의 길- 이종성
- 2000년 MBC 온달왕자들- 여재만 사장
- 2003년 MBC 1%의 어떤 것(2003)- 이규철
- 2004년 SBS 2004 인간시장- 오종두
- 2006년 KBS 위대한 유산- 정일도
- 2007년 SBS 마녀유희 - 마춘포 역
- 2009년 KBS 솔약국집 아들들- 송시열
- 2010년 SBS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차풍
- 2012년 KBS 울랄라 부부- 월하노인
- 2013년 MBC 불의 여신 정이- 문사승
- 2014년 tvN 꽃할배 수사대- 한원빈
- 2016년 JTBC 마담 앙트완- 김문곤
- 2019년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2: 죄와 벌- 국현일
2.2. 영화 [편집]
- 1988년 여자세상- 박 교수
- 2000년 플란다스의 개- 변 경비
- 2003년 불어라 봄바람- 노작가
- 2003년 살인의 추억- 구희봉
- 2003년 선생 김봉두- 최 노인
- 2004년 시실리 2km- 변 노인
- 2004년 여선생 VS 여제자- 교장
- 2005년 공공의 적 2- 안효준
- 2005년 주먹이 운다- 박 사범
- 2006년 괴물- 박희봉
- 2007년 더 게임- 강노식
- 2007년 이장과 군수- 백 사장
- 2008년 적과의 동침- 구장어른
- 2009년 킹콩을 들다- 교육감
- 2010년 초능력자- 정식 (특별 출연)
- 2012년 간첩- 윤 고문
- 2013년 미스터 고- 웨이웨이의 할아버지
- 2017년 옥자- 주희봉
- 2019년 양자물리학- 백 영감
2.3. 수상내역 [편집]
수상 연도 | 시상식 | 부문 | 작품 |
1985년 | 제21 회 백상예술대상 | TV부문 인기상 |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 |
2006년 | 제27 회 청룡영화상제 | 남우조연상 | 괴물 |
제51 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 남우조연상 | ||
제9 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 올해의 남자배우상 | ||
2007년 | 제4 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 최고의 남자조연 배우상 | |
2014년 | 단막극연기상 | 내 인생의 혹 | |
2020년 | 제11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
3. 여담 [편집]
[1] 1회 졸업생이다. 고교 1년 후배로 임현식이 있다.[2] 당시 한명회역을 맡았던 정진이 먼저 했고 먼저 히트쳤던 대사다. 이후 KBS의 1994년 드라마 한명회에서 이덕화 역시 같은 대사를 하는데 사극 모두 작가가 같은 사람이라서 예전에 히트한 대사를 다시 한명회에서 써먹은 것이다. 당시 정진이 먼저 이 대사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유자광 역의 변희봉만 했다고 기억하는 이유는 뒤에 나오는 진광탕 광고 때문이다. 똑같은 대사를 그것도 유행어가 될 정도로 시청자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던 대사를 유자광이 바로 이어서 똑같이 하는 이유는 신봉승 작가가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알려주는 장치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히트 친 대사를 재탕해 먹은 거거나.[3] 광동제약 진광탕 광고에서 과거시험 출제 문관으로 나오는데 "오늘의 주제는 감기몸살~!"이라고 그 특유의 발성으로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다른 선비들이 우왕좌왕할 동안 득의만만한 주인공(?)이 "진광탕이오~!" 하니 "옳거니!"하고 받아치고 장원급제를 시키는 스토리(...). 그리고 그 유명한 "감기 이 손 안에 있소이다."란 대사가 등장. 분명 주연은 다른 사람인데 변희봉이 다해먹은 광고 이 광고는 나중에 서영웅 작가의 굿모닝 티처에서 '형민우 작가의 태왕북벌기를 패러디한 장면에도 등장한다(...). 호태왕이 감기를 쳐부수고 계시구나[4] 논두렁 씬이 애드리브라고 잘못 알려졌는데, 애드리브가 아니라 100% 대본으로 구성된 장면이다.[5] 사실 변희봉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대박이 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은 봉준호 감독의 대표작이고 한국영화에서 중요한 작품들이다. 특히 괴물은 네 번째 천만 영화라는 점에서, 그리고 천삼백만 명이나 관람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영화 판도를 바꾸었다. 변희봉은 봉준호 감독의 핵심 작품마다 출연하며 대박을 함께 한 것이다.[스포일러] 사실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노인 노숙자가 나오긴 한다. 주인공인 김혜자에게 추근대기도 하고.[7] 영화 '더 게임'에서는 신하균과 함께 공동 주연을 했다.[8] 미스터 선샤인 캐스팅 받고 건강검진하러 갔는데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 캐스팅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었을 거라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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