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주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름 | 오스바우두 벨로주 바후스[1] (Osvaldo Velloso Barros) |
생년월일 | |
사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코룸바 |
포지션 | |
신체조건 | 174cm / 74kg |
등번호 | -[2] |
소속팀 | 바히아노 테니스 (1926-1928) 플루미넨시 FC (1928-1935) |
국가대표 | 3경기 / 0골(1930-1931) |
1. 생애 [편집]
1.1. 클럽 [편집]
1.2. 국가대표 [편집]
벨로주는 1930년부터 1931년까지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였고 3경기(2실점)의 공식 경기와 1경기(1실점)의 비공식 경기를 치렀다.
그는 브라질 대표팀의 초대 월드컵 멤버 중 한 명으로 볼리비아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월드컵과 A매치에 데뷔하였다. 이 경기에서 벨로주는 볼리비아 공격수 호세 부스타만테의 페널티 킥을 막아내는 활약을 펼쳤고, 브라질은 볼리비아를 4대0으로 대파하였다.
벨로주는 프랑스와의 시합에 출전하였고 또 다른 레전드 수비수 도밍구스 다 기아와 좋은 호흡을 보이며 3대2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 외에도 히우 브랑쿠 컵에서 월드컵 챔피언 우루과이를 2대0으로 꺾어 3경기의 A매치 출전 기록을 남겼다.
그는 브라질 대표팀의 초대 월드컵 멤버 중 한 명으로 볼리비아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월드컵과 A매치에 데뷔하였다. 이 경기에서 벨로주는 볼리비아 공격수 호세 부스타만테의 페널티 킥을 막아내는 활약을 펼쳤고, 브라질은 볼리비아를 4대0으로 대파하였다.
벨로주는 프랑스와의 시합에 출전하였고 또 다른 레전드 수비수 도밍구스 다 기아와 좋은 호흡을 보이며 3대2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 외에도 히우 브랑쿠 컵에서 월드컵 챔피언 우루과이를 2대0으로 꺾어 3경기의 A매치 출전 기록을 남겼다.
2. 사생활 [편집]
1935년 축구계에서 은퇴한 후, 벨로주는 베라 마리아 테이카우와 결혼하였고, 두 아이를 두었다. 59년 간 결혼 생활 이후, 벨로주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아내 베라는 2009년에 9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3. 뒷이야기 [편집]
4. 수상 [편집]
4.1. 클럽 [편집]
- 캄페오나투 바히아노 우승 1회: 1927(바이아나이스 테니스)
- 캄페오나투 바히아노 준우승 1회: 1928(바이아나이스 테니스)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준우승 1회: 1933(플루미넨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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