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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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달촌/배달촌(白達村) [편집]

배달촌 또는 백달촌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계족산[1]으로 불리는데 오래전 봉황산(鳳凰山)으로 불렸다가 언젠가 부터는 백달산 또는 배달산이라고 불리는 산 자락이었으며 현재의 대덕구 중리동에 해당한다. 배달촌의 배달은 배달민족의 배달(倍達)에 해당한다. 배달이라는 단어의 출전은 불명확하다 박달나무 박달의 한자식 표기라는 설과 함께 백달의 음역이라는 설이 있는데 우리말에 단(檀)을 백달(白達)이라고도 하며, 군(君)을 임금이라고 한다. 백달임검 또는 배달임금 이라고 하였던 것을 뒤에 단군(檀君)이라 하였고 이것은 배달(倍達)처럼 한자로의 음역인 것이다. 따라서 배달산 자락의 배달촌은 단군과 연관있고 지명의 연원은 백제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백제를 세운 지배 계층이 고조선의 후신인 부여계며 기자의 후손이 세운 마한의 지도층과 융화되었는데 이곳에 자리잡은 송유(宋愉)기자의 후손들과 뿌리가 같은 종친이니 백달촌에 자리 잡은건 한반도에서 연원한 고대문명의 씨족으로서 정체성과 사연이 깊다 하겠다.
[1] 세종실록지리지는 계족산에 대해 "향인이 이르기를 하늘이 가물 때 이 산이 울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라고 기록이 하고 있다. 일찍부터 계족산이 회덕 백성들로부터 신성한 지역으로 숭배를 받아왔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계족산의 짐승을 건드리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지켰다고 한다. 이곳에는 노루나 토끼 등 짐승이 많았으나 수렵꾼들 조차 계족산의 짐승을 잡는 것을 두려워 했다는 것이다. 성지의 짐승을 잡는 것조차 죄악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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