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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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訪北
북한을 자의적인 의사로 일시적으로 방문하는 것을 말한다. 역시 자의이기는 하나 영구적인 귀순을 목적으로 가는 월북이나 타의로 납치되어 가게되는 납북과는 차이가 있다. 반대로 북한에서 자의로 일시적인 방문을 목적으로 오는 경우 방남이라고 한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남한 사람이 북한을 방문한 사례는 정부 유력 인사만 남북 회담 등을 이유로 극비리에 오가는 정도였다. 오래 전 남북 연석회담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김구 정도였고, 그 이후 1972년 김일성을 만나기 위해 이후락이 비밀리에 방문한 적은 있다.[1] 그렇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인 김대중 정부 당시 햇볕정책을 도입하면서 현대그룹이 숙원사업으로 진행한 대북사업 또한 순조롭게 진행된 이후 남북간 상호투자 등 경제교류가 활성화되고 대한민국 정부에서 개성공단을 조성하면서 경제인들도 많이 찾게 되었다. 상호간의 문화, 체육 분야의 교류를 위해 북한을 방문하는 문화 인사들도 많았으며, 1998년 금강산까지 대형 여객선을 띄우기 시작한 이후 이명박 정부 초기까지는 관광 목적으로 소정의 허가 절차를 거쳐서 북한을 방문할 수도 있었다. 한국의 국가원수로써 북한을 방문한 것은 세 번.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목적으로 평양을 방문하였으며,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남북정상회담을 목적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다.
한국 국적을 가지지 않은 외국인 또한 북한을 방문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북한 당국에서 철저히 제한된 코스로만 안내하고 안내원을 가장한 감시자를 꼭 붙여 다니는 등 관광이 가능하기는 가능하다. 각종 인권, 식량 지원 단체 등 NGO 인사들도 실태조사를 이유로 방문하는 사례도 간혹 있다.
북한을 자의적인 의사로 일시적으로 방문하는 것을 말한다. 역시 자의이기는 하나 영구적인 귀순을 목적으로 가는 월북이나 타의로 납치되어 가게되는 납북과는 차이가 있다. 반대로 북한에서 자의로 일시적인 방문을 목적으로 오는 경우 방남이라고 한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남한 사람이 북한을 방문한 사례는 정부 유력 인사만 남북 회담 등을 이유로 극비리에 오가는 정도였다. 오래 전 남북 연석회담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김구 정도였고, 그 이후 1972년 김일성을 만나기 위해 이후락이 비밀리에 방문한 적은 있다.[1] 그렇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인 김대중 정부 당시 햇볕정책을 도입하면서 현대그룹이 숙원사업으로 진행한 대북사업 또한 순조롭게 진행된 이후 남북간 상호투자 등 경제교류가 활성화되고 대한민국 정부에서 개성공단을 조성하면서 경제인들도 많이 찾게 되었다. 상호간의 문화, 체육 분야의 교류를 위해 북한을 방문하는 문화 인사들도 많았으며, 1998년 금강산까지 대형 여객선을 띄우기 시작한 이후 이명박 정부 초기까지는 관광 목적으로 소정의 허가 절차를 거쳐서 북한을 방문할 수도 있었다. 한국의 국가원수로써 북한을 방문한 것은 세 번.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목적으로 평양을 방문하였으며,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남북정상회담을 목적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다.
한국 국적을 가지지 않은 외국인 또한 북한을 방문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북한 당국에서 철저히 제한된 코스로만 안내하고 안내원을 가장한 감시자를 꼭 붙여 다니는 등 관광이 가능하기는 가능하다. 각종 인권, 식량 지원 단체 등 NGO 인사들도 실태조사를 이유로 방문하는 사례도 간혹 있다.
2. 사례 [편집]
2.1. 합법 [편집]
2.1.1. 국내 [편집]
2.1.1.1. 대통령 [편집]
대통령 취임 전 또는 퇴임 후 방북한 경우에도 이 목록에 서술한다. |
- 문재인 : 역시 대통령이 되기 전인 2004년에 청와대 사회문화수석비서관 재직 당시 어머니의 이산가족(여동생, 문재인의 이모)상봉을 위해 금강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또한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과 손잡고 판문점 구역에서 잠시 군사분계선을 넘어 몇 초간 방북을 했으며 다음 달 열린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북측 통일각에서 열려 확실하게 다시 한 번 방북하게 되었다. 이후 9월 열린 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또 방북했다.
2.1.1.2. 그 외 [편집]
- 개성공단 관계자
- 금강산 관광객들(1998년~2008년)
- 문선명 : 공식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의 첫 방북, 대통령보다도 먼저 방북했다. 김일성의 공식적인 초대.
- 유홍준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북한편을 출간하고자 방북, 평양과 금강산을 다녀왔다.
- YB : 2002년 MBC가 주최한 '2002남북예술인 평양공연'의 일환으로 방북하여 공연. 2018년 북한공연때도 방북.
- 컬러링 베이비 7공주 : 인터뷰에서 북한에 공연을 갔었다고 했다.
- 허재 : 2003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 기념으로 SBS에서 주최한 통일농구대회의 일환으로 육로로 방북. 2018년에도 남북통일농구대회 참가 차 방북하였다.
- 이선희 : 2003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 기념으로 SBS에서 주최한 기념 공연의 일환으로 육로로 방북. 2018년 북한공연때도 방북.
- 홍준표 : 2011년 한나라당 대표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 고은 : 2000 남북정상회담 특별 수행원으로 방북.
- 조정래 : 2007 남북정상회담 특별 수행원으로 방북.
- 김용옥 : 2007 남북정상회담 특별 수행원으로 방북.
- 허영만 : 북한의 초청을 받아 평양에 다녀온 적이 있다. 허영만 화백은 평양 방문 이후 북한음식 특집을 식객에 연재하기도 했다.
- KEDO(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 관련자들
-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 2018 AFC 여자 아시안컵 요르단 예선전에 참가하기 위해 2017년 3월 13일에 발표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등 27명 규모의 선수단이 방북하여 평양의 김일성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루었고 4전 3승 1무의 성적으로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평양의 기적 문서 참고. 당시 선수단
2.1.2. 외국인 [편집]
- 빌 클린턴: 2009년 8월 방북.
- 로저 클린턴: 위에 빌 클린턴의 이부동생인 미국의 가수인데, 형의 대통령 재임시 남한 가수들과 평양을 방문하여 공연을 한 바 있다.
- 지미 카터: 1994년 6월, 2010년 8월 방북.
- 요란 페르손: 전 스웨덴 총리.
- 체 게바라:1960년 12월 방북.
- 후진타오: 2005년 10월 방북.
- 블라디미르 푸틴: 2000년 6월 방북.
- 니콜라에 차우셰스쿠[7]: 1971년 6월 방북.
- 요시프 브로즈 티토: 1971년 8월 방북.
- 피델 카스트로: 1986년 3월 방북.
- 알리 하메네이: 대통령 신분으로 방북.
- 시진핑: 2008년 국가 부주석 신분으로 방북. 2019년 국가 주석 신분으로 방북.
- 미겔 디아스카넬: 2015년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 신분으로 방북. 2018년 국가평의회 의장 신분으로 방북.
- 차히아 엘벡도르지: 전 몽골 대통령.
- 쫌말리 사이야썬: 전 라오스 주석.
- 에릭 슈미트: 2013년 1월 방북.
-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1986년 2월 방북. 1998년에 북한에 잠깐 망명지를 옮긴 적이 있으며 2011년 북한 이주 설이 있는데 관련 자료가 안보인다.
- 노로돔 시아누크 부부: 북한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 신은미 부부
- 후지모토 겐지 : 아예 북한에서 십수년간 살며 김정일을 위해 요리를 해주었으며 2001년 탈북 이후에 두차례나 북한을 찾아 김정은을 만나기도 했다.
- 비탈리 만스키 :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를 찍기 위해 방북했던 러시아 감독. 북한에서 또 오라고 구슬렀지만 난 바보 아니다 라고 거부했다고...
사실 국외 인물을 서술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 외국인 입장에서는 비자 받는 것과 여행편이 좀 까다롭긴 해도 국가보안법처럼 방북을 법률로 막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양각도국제호텔, 마식령스키장 같은 곳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고 이런 곳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셀 수 없이 많다. 단 최근에 미국같은 경우는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자국민의 방북을 막고 있다.
2.2. 불법 [편집]
3. 관련 문서 [편집]
[1]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바로 7.4 남북 공동 성명이다. 참고로 이후락은 방북 전 부터 혹시 모를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 자살용 청산가리 캡슐을 몰래 품고 간 일화는 유명하다.[2] 당시 공군 1호기(현 공군2호기, 737-3Z8)를 이용했기 때문에 최초로 공로를 이용해 방북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3] 당시 통일부에서는 결격사유가 없으면 방북을 허가할 방침이라고 했으므로 정부 승인은 받은 걸로 보인다.#[4] 참고로 한국 국민 중 공식적으로 김정일-김정은 부자를 모두 만난 인물은 김정일 장례 당시 함께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이희호 여사밖에 없다. SK그룹 최태원 회장도 2007년과 2018년 두차례 남북정상회담 수행원으로 방문하여 김씨부자를 모두 만났다.[5] 대북사업에 별 관심 없던 이건희 대신 간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상 대외적인 삼성그룹의 얼굴이라 간 것도 있다.[6] 북일수교를 위한 협상 차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나려고 방북한 것. 북일수교는 결국 물 건너 갔지만...참고로 두 번 모두 당일치기로 다녀왔다고 한다.[7] 이때 주석궁과 김일성 신격화를 보고 혹해서 같은 짓을 자기 나라에서도 하다가 아내와 같이 벌집이 되어 죽었다.[8] 세계일보 회장 재직 당시 김일성이 죽자 문선명이 강제로 보낸 조문 특사였다. 정부의 허락 없이간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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