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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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2. 사례
2.1. 합법
2.1.1. 국내
2.1.1.1. 대통령2.1.1.2. 그 외
2.1.2. 외국인
2.2. 불법
3.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訪北

북한을 자의적인 의사로 일시적으로 방문하는 것을 말한다. 역시 자의이기는 하나 영구적인 귀순을 목적으로 가는 월북이나 타의로 납치되어 가게되는 납북과는 차이가 있다. 반대로 북한에서 자의로 일시적인 방문을 목적으로 오는 경우 방남이라고 한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남한 사람이 북한을 방문한 사례는 정부 유력 인사만 남북 회담 등을 이유로 극비리에 오가는 정도였다. 오래 전 남북 연석회담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김구 정도였고, 그 이후 1972년 김일성을 만나기 위해 이후락이 비밀리에 방문한 적은 있다.[1] 그렇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인 김대중 정부 당시 햇볕정책을 도입하면서 현대그룹이 숙원사업으로 진행한 대북사업 또한 순조롭게 진행된 이후 남북간 상호투자 등 경제교류가 활성화되고 대한민국 정부에서 개성공단을 조성하면서 경제인들도 많이 찾게 되었다. 상호간의 문화, 체육 분야의 교류를 위해 북한을 방문하는 문화 인사들도 많았으며, 1998년 금강산까지 대형 여객선을 띄우기 시작한 이후 이명박 정부 초기까지는 관광 목적으로 소정의 허가 절차를 거쳐서 북한을 방문할 수도 있었다. 한국국가원수로써 북한을 방문한 것은 세 번.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목적으로 평양을 방문하였으며,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남북정상회담을 목적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다.

한국 국적을 가지지 않은 외국인 또한 북한을 방문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북한 당국에서 철저히 제한된 코스로만 안내하고 안내원을 가장한 감시자를 꼭 붙여 다니는 등 관광이 가능하기는 가능하다. 각종 인권, 식량 지원 단체 등 NGO 인사들도 실태조사를 이유로 방문하는 사례도 간혹 있다.

2. 사례 [편집]

2.1. 합법 [편집]

2.1.1. 국내 [편집]

2.1.1.1. 대통령 [편집]
대통령 취임 전 또는 퇴임 후 방북한 경우에도 이 목록에 서술한다.

전두환, 김영삼의 방북은 거의 성사 직전까지 갔었으나, 전두환의 경우에는 북한이 정상회담을 협의하면서 동시에 부산에 간첩선을 내려보내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자 대화하면서 간첩선을 보내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 격노한 전두환이 판을 엎으면서 무산되었고, 김영삼은 방북 직전에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무산되었다. 이명박도 서울시장 재직시절인 2005년에 경평 축구대회 등 남북사업교류 차원에서 방북하려고 했으나 무산되었다.
2.1.1.2. 그 외 [편집]

2.1.2. 외국인 [편집]

사실 국외 인물을 서술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 외국인 입장에서는 비자 받는 것과 여행편이 좀 까다롭긴 해도 국가보안법처럼 방북을 법률로 막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양각도국제호텔, 마식령스키장 같은 곳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고 이런 곳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셀 수 없이 많다. 단 최근에 미국같은 경우는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자국민의 방북을 막고 있다.

2.2. 불법 [편집]

참고: 목적이 귀순이 아닌 방북이라도 방문증명서가 없으면 국가보안법상 잠입, 탈출이다.

3. 관련 문서 [편집]

[1]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바로 7.4 남북 공동 성명이다. 참고로 이후락은 방북 전 부터 혹시 모를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 자살용 청산가리 캡슐을 몰래 품고 간 일화는 유명하다.[2] 당시 공군 1호기(현 공군2호기, 737-3Z8)를 이용했기 때문에 최초로 공로를 이용해 방북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3] 당시 통일부에서는 결격사유가 없으면 방북을 허가할 방침이라고 했으므로 정부 승인은 받은 걸로 보인다.#[4] 참고로 한국 국민 중 공식적으로 김정일-김정은 부자를 모두 만난 인물은 김정일 장례 당시 함께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이희호 여사밖에 없다. SK그룹 최태원 회장도 2007년과 2018년 두차례 남북정상회담 수행원으로 방문하여 김씨부자를 모두 만났다.[5] 대북사업에 별 관심 없던 이건희 대신 간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상 대외적인 삼성그룹의 얼굴이라 간 것도 있다.[6] 북일수교를 위한 협상 차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나려고 방북한 것. 북일수교는 결국 물 건너 갔지만...참고로 두 번 모두 당일치기로 다녀왔다고 한다.[7] 이때 주석궁과 김일성 신격화를 보고 혹해서 같은 짓을 자기 나라에서도 하다가 아내와 같이 벌집이 되어 죽었다.[8] 세계일보 회장 재직 당시 김일성이 죽자 문선명강제로 보낸 조문 특사였다. 정부의 허락 없이간 국가보안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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