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규(1902)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본관 | |
출생 | |
사망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박천규는 1902년 11월 7일 평안북도 선천군 신미면 삼봉리(현 평안북도 선천군 삼봉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9월 30일 독립청년단의 의주지부가 자신의 당숙인 박병익에게 조직되자, 그는 기에 가담하여 동지 10여명을 규합하는 한편 독립운동자금 1,200원을 모연하였다.
1920년 4월초 이 사실이 탄로나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동년 6월 29일 신의주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 위반이란 혐의로 징역 5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의사로서 의료활동에 종사하였다.
1943년에는 오산중학교에서 교의(校醫)로 근무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애국정신을 앙양하기 위한 계몽활동을 하다가 동년 8월에 정주 경찰서에 체포되어 다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8.15 광복 후 월남하여 파주에 거주하다 1967년 10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박천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9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920년 4월초 이 사실이 탄로나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동년 6월 29일 신의주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 위반이란 혐의로 징역 5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의사로서 의료활동에 종사하였다.
1943년에는 오산중학교에서 교의(校醫)로 근무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애국정신을 앙양하기 위한 계몽활동을 하다가 동년 8월에 정주 경찰서에 체포되어 다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8.15 광복 후 월남하여 파주에 거주하다 1967년 10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박천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9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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