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영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황해도 해주목 일신면 칠리[1]
(현 황해남도 청단군 남촌리)
사망
몰년 미상
사망지 미상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박창영은 1882년생이며 황해도 해주목 일신면 칠리(현 황해남도 청단군 남촌리) 출신이다. 그는 1920년 12월 황해도 해주군에서 주비단(籌備團)에 가입한 뒤 1921년 3월경까지 주비단원 안인학(安仁學)·신용섭(申容燮)·김종기(金鍾基)·김일제(金一濟)·오수남(吳壽男) 등과 함께 해주군 일대에서 단원 및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현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음을 받는 등으로 해서 약 5천 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보냈다.

또한 그는 제화교(濟化敎) 신자이기도 했다. 제화교는 증산교를 모태로 1910년 이래 각지에서 난립한 결사적 성격의 교파들 가운데 하나로 나중에 삼덕교(三德敎)로 개칭되었다.

1921년 3월 체포된 박창영은 1921년 6월 28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죄 등으로 징역 5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10월 1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박창영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해주군 일신면 칠리·팔리 각 일부와 청운면의 양학리 일부, 추이면의 삼리 일부 지역을 병합해 일신면 제산리가 되었다.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