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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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선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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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선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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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창선 (朴昌善 / Park Chang-Sun)
생년월일
국적
출신지
포지션
신체조건
170cm / 65kg
유스팀
소속팀
포항제철 (1977~1982)
육군 충의 축구단(군복무) (1978~1980)
할렐루야 독수리 (1983)
대우 로얄즈 (1984~1986)
유공 코끼리 (1987)
감독
동아고등학교 (1992~199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0 (1998)
경희대학교 (1994~2003)
박창선 축구클럽 (2010~)
국가대표
32경기 8골
목차
1. 개요2. 축구인 생활
2.1. 선수
2.1.1. 클럽2.1.2. 국가대표
2.2. 플레이 스타일2.3. 지도자

1. 개요 [편집]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대한민국 역사상 월드컵 첫골을 달성한 선수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U-20 국가대표팀 감독, 경희대학교 축구부 감독 등을 맡았다. 2010년부터 박창선 축구클럽의 감독을 하고 있다.

2. 축구인 생활 [편집]

2.1. 선수 [편집]

2.1.1. 클럽 [편집]

경남 김해 출신으로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뒤 1977년 실업팀인 포항제철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이후 육군에서 군복무를 한 후 1983년 프로축구리그가 창설되자 할렐루야 독수리의 창단멤버가 되었다. 할렐루야에서 15경기에 출장해 3골 6도움을 기록하였고, 6개의 도움으로 도움왕에 올랐고,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시즌 종료 후 대우 로얄즈로 이적하였다. 1984년 대우에서 28경기에 출장해 6골 7도움을 올리며 대우의 첫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었고, 리그 MVP에 선정되었다. 이후 1987년 유공 코끼리로 이적하였고, 유공에서 13경기 2골 1도움을 기록하고,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2.1.2. 국가대표 [편집]




1979년 처음 국가대표로 데뷔, 1986년까지 32경기에 출장해 8골을 기록하였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서 대표팀의 주장으로 참가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중거리 슛으로 득점하며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의 본선 무대 첫 골을 기록한 선수로 각인되었다. 그것도 슈퍼스타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끌던 시절의 아르헨티나였으니.. 더더욱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도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하였다.[1]

2.2. 플레이 스타일 [편집]

박창선의 최대 장점은 강력한 중거리슛과 전방으로의 볼 배급이었으며 전성기에는 찬스 메이킹 능력도 장착한 플레이메이커였다. 이 시기에 K리그 초대 도움왕이 되기도 했고 월드컵에서 최초로 10번 역할을 하면서 역대 우리나라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평가 받고 있다. 다만, 그 절정의 기량을 보여준 전성기 기간이 짧았고 조광래, 이영무, 이태호 같은 쟁쟁한 미드필더들에게 밀려 오랫동안 국가대표에서 빛을 못 봤다. 그 때문에 A매치 출전 수도 적은 편이다.

2.3. 지도자 [편집]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은퇴 이후 1992년 동아고등학교 지휘봉을 잡으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1998년 대한민국 U-20 대표팀의 감독을 맡았고, 1994년부터 모교인 경희대학교 축구부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2003년까지 10년간 지휘한 바 있다.

2010년부터 본인의 고향인 김해시에서 박창선 축구클럽(PCS FC)의 감독으로 유소년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다.
[1] 이때 금메달을 차지한 멤버는 박경훈 前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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