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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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박제영은 1904년 6월 8일 강원도 춘천군 춘천면 사창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박수복(朴守福), 박제영(朴濟榮)이다. 그는 1926년 서울에서 서울청년회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7년 3월 이광(李珖)의 권유로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5월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에서 경기도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29년에는 고려공산청년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1930년 7월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전국군부동맹(全國郡府同盟) 대표자대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2개월 여의 옥고를 치르고, 같은 해 9월경 중앙청년동맹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박제영은 1926년부터 1931년까지 사회주의운동 관련 사건으로 수차례 구류처분을 받았으며, 1932년 1월 심치령(沈致寧) 등과 함께 노동자와 농민, 학생들을 조직하여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투옥 중 발발했던 늑막염이 악화되어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박제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930년 7월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전국군부동맹(全國郡府同盟) 대표자대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2개월 여의 옥고를 치르고, 같은 해 9월경 중앙청년동맹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박제영은 1926년부터 1931년까지 사회주의운동 관련 사건으로 수차례 구류처분을 받았으며, 1932년 1월 심치령(沈致寧) 등과 함께 노동자와 농민, 학생들을 조직하여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투옥 중 발발했던 늑막염이 악화되어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박제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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