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농구인)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이름 | 박재현(朴在賢) |
생몰년도 | |
국적 | |
출신학교 | |
가족 | 아내 박수완, 딸 박현민, 아들 박현준 |
포지션 | |
신체 사이즈 | 189cm |
프로입단 | 1992년 현대전자 입단 |
역대 소속팀 | |
1. 개요 [편집]
2. 아마추어 및 프로 시절 [편집]
동국대학교 재학 시절, 1년 후배 봉하민과 함께 1991년에 개최된 대학선발팀에 뽑혀 이상백배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으나 현대전자 입단 시까지는 거의 무명이었고, 불과 1년만에 조용히 상무에 입대를 결정한다. 1993-94 농구대잔치 준우승의 주역들인 정재근, 김상식, 이창수, 표필상, 남경원이 대거 제대하면서 전력이 약해져 버렸지만 다음해인 1994-95 농구대잔치에서 에이스 가드 오성식을 중심으로 무명선수들(박재현 본인을 포함해 이상범, 김현주, 김현국, 이병률)이 똘똘 뭉쳐 정규리그 6위로 플레이오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이때 박재현은 189cm의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수비에서 4번으로 뛰면서 센터 이병률과 함께 상무의 포스트를 지켰고, 공격시엔 정확한 3점을 연이어 꽂으며 자신의 이름을 전국에 알렸다.
파일:박재현 대전현대 시절.jpg
파일:부산 기아 시절의 박재현.jpg
1997년 KBL 출범으로 인해 팀명이 대전 현대로 바뀐 이후에도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팀의 키 식스맨이자 에이스 스토퍼로 뛰면서 1998년과 1999년에 2년 연속으로 우승에 기여했고, 이후 광주 나산과 부산 기아에서 각각 1년간 뛰고 은퇴했다. 그런데....
파일:박재현 대전현대 시절.jpg
파일:부산 기아 시절의 박재현.jpg
1997년 KBL 출범으로 인해 팀명이 대전 현대로 바뀐 이후에도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팀의 키 식스맨이자 에이스 스토퍼로 뛰면서 1998년과 1999년에 2년 연속으로 우승에 기여했고, 이후 광주 나산과 부산 기아에서 각각 1년간 뛰고 은퇴했다. 그런데....
3. 사망 [편집]
4. 사망 이후 [편집]
5. 관련 문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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