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수(1888)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박용수(朴龍水)
이명
박용수(朴用水)
생몰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 소덕리
사망지
추서
대통령표창

박용수는 1888년 6월 6일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 소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9일 동래군 구포면 서기 임봉래(林鳳來), 윤경(尹涇)ㆍ유기호(柳基護)ㆍ박영초(朴永初)ㆍ이수연(李守連) 등이 주도한 동래군 구포면에서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구포시장에 모인 1,000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 과정에서 12명의 주도자가 일본 군경에게 체포되자, 시위 군중은 석방을 요구하며 무력으로 항쟁을 벌였다. 이날의 시위로 박용수 등 43명의 주도자가 체포되었다.

이 일로 재판에 회부된 그는 1919년 8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에 처해졌다. 이후 김해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3년 4월 1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박용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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