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호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 박영호(朴永鎬) |
이명 | 박춘흥(朴春興) |
생몰 | |
사망지 |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편집]
박영호는 1899년 1월 1일 경기도 남양군 수산면 사강동(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6일 홍면(洪冕)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송산면사무소에 태극기를 게양했다. 이후 28일 송산면 뒷산에서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대대적인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할 때 참가했다.
이때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코오조오(野口廣三)가 홍면 등 2~3명을 체포하려 했다. 이에 홍면이 저항하자, 노구치는 권총을 꺼내 홍면을 쏴죽였다. 이에 분노한 군중이 일본 경찰을 쳐죽이자고 외치자, 노구치는 자전거를 타고 사강주재소 방면으로 달아났다. 이에 그는 홍면의 동생 홍준옥, 홍면의 장인 김명제(金命濟), 그리고 김교창·왕광연·김용준(金容俊) 등과 추적하여 투석으로 격살시켰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0년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살인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화성에서 조용히 지내다 1994년 4월 2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박영호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994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이때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코오조오(野口廣三)가 홍면 등 2~3명을 체포하려 했다. 이에 홍면이 저항하자, 노구치는 권총을 꺼내 홍면을 쏴죽였다. 이에 분노한 군중이 일본 경찰을 쳐죽이자고 외치자, 노구치는 자전거를 타고 사강주재소 방면으로 달아났다. 이에 그는 홍면의 동생 홍준옥, 홍면의 장인 김명제(金命濟), 그리고 김교창·왕광연·김용준(金容俊) 등과 추적하여 투석으로 격살시켰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0년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살인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화성에서 조용히 지내다 1994년 4월 2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박영호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994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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