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1900)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 박영준(朴永俊) |
이명 | 박영준(朴英俊), 박남준(朴南俊) |
생몰 | |
사망지 |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박영준은 1900년 2월 28일 경상남도 거제군(현 거제시) 동부면 산양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7년 중국 봉천성 심양 흥경(興京)시[1] 소재의 독립군에 가입하여 양식과 군자금 조달을 위하여 활동했다. 그러나 1924년 6월 단오절에 열린 심양 조선동포운동대회에 참석했다가 밀정의 밀고로 일경에게 붙잡혀 평양으로 이송되었다. 이후 1925년 11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29년 3월 21일 신의주형무소에서 출감하였다. 출옥 후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다 1945년 4월 1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박영준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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