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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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박영심은 1895년 12월 4일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면 용수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6월 독립중로선전부(獨立中露宣戰部) 부원인 김하련(金河鍊)의 의뢰를 받아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김하련은 평소 우리 조선이 중국, 러시아, 미국 등과 연합하고 있어서 머지않아 독립이 실현될 것이라고 역설하면서 조선 각지에서 군자금 모집을 요청하였다. 또 흑룡강성에 있는 조선인 동포들은 조선독립운동에 노력할 뿐만 아니라 총기와 탄약을 매입하며 전투할 단원을 모집하는 중이라면서 단원 모집에도 노력하였다.
박영심은 1920년 음력 6월 8일경 김하련으로부터 독립중로선전부의 군자금 모집을 의뢰받고, 마을 주민 수십 명을 자기 집으로 불러 모은 뒤 60원을 모집하여 김하련에게 주었다. 이 일로 1920년 10월 경 동지 50여 명과 함께 웅기경찰서에 체포된 뒤 1921년 5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신의주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경흥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29년 8월 1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박영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박영심은 1920년 음력 6월 8일경 김하련으로부터 독립중로선전부의 군자금 모집을 의뢰받고, 마을 주민 수십 명을 자기 집으로 불러 모은 뒤 60원을 모집하여 김하련에게 주었다. 이 일로 1920년 10월 경 동지 50여 명과 함께 웅기경찰서에 체포된 뒤 1921년 5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신의주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경흥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29년 8월 1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박영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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