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도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박승도(朴勝道)
생몰
황해도 안악군 은홍면 학산리
사망지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박승도는 1897년 2월 18일 황해도 안악군 은홍면 학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서울에서 전개된 3.1 운동에 참가하고 귀향한 박치간, 정계로, 유용원(柳龍源)과 함께 은홍면 온정리 장날인 3월 11일을 이용해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했다. 이에 매일 밤 학산리에 소재한 유용원의 집에 모여서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문을 등사하며, 은홍·대행·서하 면내의 각 교회에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도록 연락하였다.

3월 11일 오전 11시 온정리 교회 내의 정엽(李正燁)의 집에 수백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모여, 선명학교(善明學校)교장 박치간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것으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모두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이라고 쓴 선두의 큰 기를 따라 시가행진을 하였다. 이때 그는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하던 중, 헌병 주재소 앞을 지나가는데 일본 헌병 1명과 조선인 보조원 2명이 나와서 대한독립기를 빼앗으려고 하였다. 이때 그는 위협하는 보조원의 총검을 빼앗아 그를 때려서 쓰려뜨렸다. 그러자 다른 보조원은 도망치고 겁에 질린 일본 헌병은 살려달라고 애걸하며 대한독립만세를 따라 외쳤다.

그러나 일본 헌병들이 대거 출동하여 무차별 발포했고, 결국 그는 전인식(全仁植)·김학규(金學圭)와 함께 현장에서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박승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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