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환(1896)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박수환(朴洙煥)
본관
생몰
경상북도 인동군 기산면 평복동
(현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평복리)[1]
추서
대통령표창

박수환(朴洙煥)은 1896년 11월 22일 경상북도 인동군 기산면 평복동(현 칠곡군 기산면 평복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9일 저녁 9시경, 지하수(池夏洙)·권성수 등의 주도 하에 당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3.1 운동에 호응하여, 마을 주민 몇 명과 함께 동산(東山)에 올라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가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박수환은 1919년 5월 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언도받았는데#, 이에 공소하여 같은 달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 판결이 취소되고 태형 90도를 언도받았다.#

석방된 후에는 형벌의 가혹함으로 고통받다가 1945년 6월 10일, 8.15 광복을 채 두 달여간 남겨두고 별세하였다.

200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 인근의 행정리와 함께 함양 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박수병도 이 마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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