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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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박성삼은 1876년생이며 경기도 광주군 학현 출신이다. 그는 1907년 87월 13일 임봉래(林奉來, 차치명 등과 함께 예산군 금평 장동에 거주하는 서성좌(徐聖佐)로부터 군자금 4원을 받아냈으며, 면천군 비방면 신리에 거주하던 서광숙(徐光淑)으로부터 다시 4원을 모집하고 화승총 1정을 확보했다. 또한 11월 20일 경기도 광주 청계산에서 일본 순사대와 교전하였다. 그리고 이후 1908년 2월경까지 경기도 일대에서 군자금품을 수합하면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체포된 그는 1908년 11월 10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5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박성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얼마 후 체포된 그는 1908년 11월 10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5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박성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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