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근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 박대근(朴大根) |
생몰 | |
사망지 |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대통령 표창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박대근은 1924년 1월 4일 경상남도 창원군[1] 창원면 중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2년 7월 창원면 동정리 소재 창원신사(昌原神社) 후편에서 창원보통학교(昌原普通學校) 출신의 급우 박상규, 김광수 등 10여 명과 함께 조국독립을 목적으로 청년독립회(靑年獨立會)를 조직하여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면서 1943년 4월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벽보를 창원역과 주요 관문에 붙임으로써 민족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1944년 12월 그들의 활동이 진해 헌병대에 의해 발각되었고, 일제는 이 일을 ‘창원만세사건’이라 불렀다. 이로 인하여 그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이첩 계류되어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8.15 광복을 맞이하여 부산 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이후 창원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9년 9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박대근에게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고, 2011년에는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그러나 1944년 12월 그들의 활동이 진해 헌병대에 의해 발각되었고, 일제는 이 일을 ‘창원만세사건’이라 불렀다. 이로 인하여 그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이첩 계류되어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8.15 광복을 맞이하여 부산 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이후 창원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9년 9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박대근에게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고, 2011년에는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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