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양은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군이 해산된 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을 때 동생인 박문수(朴文守)와 최경연 등과 함께 의병 100명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오가며 일본군을 상대로 항전했다. 그러나 1908년 3월 3일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 중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박기양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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