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갑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민영갑(閔泳甲)
생몰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 부평리
사망지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민영갑은 1888년 1월 28일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 부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1 운동이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재만(李載萬)과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그들은 4월 1일 밤 홍성군 금마면 가산리에 소재한 이원교(李元交)의 집에서 조선 연극이 있어 다수의 관중이 모일 것을 예상하고 그들을 선동하기로 계획했다. 또 그는 김재홍(金在洪)·조한원(趙漢元)·최중삼(崔仲三)·조재학 등에게 이 계획을 말하고 참가를 권유했다.

4월 1일 저녁 8시경, 민영갑을 비롯한 주동자들은 이원교의 집 연극 공연장에서 공연 중에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연극을 보고 있던 관중 20~30명도 여기에 호응해 독립만세를 따라 불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5년 6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민영갑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28세손 영(泳) 항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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