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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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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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6대 육군참모총장
민기식
閔耭植 | Min Ki-Sik
출생
충청북도 청주군 북일면 입동리
(現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입동리)[2]#
사망
1998년 10월 11일 (77세)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장군묘역 1-4
본관
산초(山樵)
복무
일본제국 육군
1945년 3월 2일 ~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육군
1946년 1월 6일 ~ 1965년 3월 31일
재임기간
1963년 6월 1일 ~ 1965년 3월 31일
임관
군영 1기
최종계급
대장
최종보직
육군 참모총장
주요보직
육군 보병학교장
육군 제2군단장
육군 제1군사령관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대한민국군인. 김종오 대장에 이어 16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종교불교이다.

2. 생애 [편집]

1921년 5월 20일 충청북도 청주군 북일면(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입동리에서 통덕랑 품계를 갖고 있던 아버지 민영봉(閔泳鳳)과 어머니 공인(恭人) 나주 김씨 사이의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33년 내수보통학교를, 1941년 청주중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 건국대학에 입학하였으나 본과 2년 재학 중이던 1944년 일본군 학병으로 입대했다. 1945년 종전 당시 계급은 일본군 소위였다. 1945년 9월 김종오와 함께 청주에서 일본군으로부터 인수한 무기로 무장한 100여명을 규합하여 무장자위대를 조직하였다. 해방 조국에서 학병동맹에 가입하였으나 이 단체가 좌경화 하자 탈퇴하고 국군 창설의 초석이 된 학병단 결성에 참여하였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에 입학해 소위로 임관했다. 육군보병학교장을 지내다 1950년에만 7사단, 대구방위사령관, 경인지구계엄사령관, 5사단장을 거쳤다. 1950년 10월에는 육군준장으로 승급했다. 육군대학 부총장과 21사단장을 거쳐 1952년에 육군소장으로 진급했고 육군본부 행정참모부장, 제2군단 등을 지냈다. 1961년중장으로 진급했고 제1군사령관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최종계급 육군대장. 1965년전역했다.

전역 후에 충주비료 사장을 지냈고 1967년부터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제7대, 8대, 9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되었다.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했다.

1998년 10월 11일에 별세했다.
[1] 5월 21일이라고도 한다.[2] 인근의 내수리·신안리·원통리·입상리와 함께 여흥 민씨 집성촌이다.[3] 감찰공파 29세 식(植) 항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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