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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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왕릉 文聖王陵 |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삼국사기에서는 857년 9월 병이 들어 유언과 같은 조서를 남기고 7일 후 사망해 시호를 문성이라 하고, 공작지(孔雀趾)라는 땅에 장사를 지냈다.
대한민국의 사적 제 518호로, 원래 옆에 있는 진지왕릉과 함께 사적 제178호 '신라진지문성왕릉'으로 지정했었는데, 2011년에 진지왕릉을 따로 떼고 문성왕릉을 518호로 재지정했다.
다만 이 고분이 한동안 잊혀져 있다가 문성왕릉으로 비정된 것은 조선시대에 김씨 문중에 의해서 된 것으로, 이것이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지정됐긴 하지만, 대부분의 신라 왕릉이 그렇듯 진짜 문성왕릉이 아닌 고분을 잘못 비정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서악동 고분군, 진흥왕릉 문서 참조.
대한민국의 사적 제 518호로, 원래 옆에 있는 진지왕릉과 함께 사적 제178호 '신라진지문성왕릉'으로 지정했었는데, 2011년에 진지왕릉을 따로 떼고 문성왕릉을 518호로 재지정했다.
다만 이 고분이 한동안 잊혀져 있다가 문성왕릉으로 비정된 것은 조선시대에 김씨 문중에 의해서 된 것으로, 이것이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지정됐긴 하지만, 대부분의 신라 왕릉이 그렇듯 진짜 문성왕릉이 아닌 고분을 잘못 비정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서악동 고분군, 진흥왕릉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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