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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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현실(및 전설)의 명재상 [편집]
2.1. 동아시아 [편집]
- 중국
2.2. 동남아시아 [편집]
2.3. 남아시아 [편집]
2.4. 중동 [편집]
2.5. 유럽 [편집]
3. 가공의 명재상 [편집]
[1] 다만 전국사군자는 다들 나름 뛰어난 인물들이긴 하지만 명재상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2] 법가. 위문후의 변법정치를 주도[3] 송양공의 서형[4] 미병지맹을 주도[5] 조고와 손을 잡고 2세를 세우거나 하는 등 문제도 있기는 하지만 전국시대 도량법을 통일하고 각종 제도를 신설하는 등 공이 훨씬 뛰어나다. 이름값에 비해 실제 업적이 있었나 싶었던 범수나 채택과 비교할 급이 아니다.[6] 공식 직함은 '한나라'의 상서령이었고, 촉한을 제외하면 상서령이 명실상부 재상급으로 격상하는 것은 남북조시대 이후이다.[7] 현재는 이 사람이 정말로 몽골 제국의 재상이었는지조차도 의문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야율초재 항목 참조.[8]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 이 멜루, 폼발 후작. 리스본 대지진 당시, 그러니까 통신망이라고는 우편제도가 전부였던 1755년에 포르투갈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 내진설계? 그딴 거 없던 시절이다. 모먼트 규모 8.5~9.0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자연재해에, 바다에서는 해일이 밀려오고, 도시는 지진으로 폭삭 내려앉았으며, 건물은 화마에 사로잡혀 있었다. 카르발류는 그야말로 지옥도가 도래한 리스본을 아주 훌륭하게 수습하였고, 재건하였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조차 저 정도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을 때 과연 행정부가 얼마나 잘 대처할 수 있는가에 견주어보면, 국가가 막장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다. 그런 이유로, 18세기 중반에 사망자 수습, 난민 구휼, 도시 재건의 삼박자를 아주 깔끔하게 해냈다는 점에서 충분히 명재상의 반열에 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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