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시정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맹시정은 1877년생이며 함경남도 풍산군 안산면 하지원리 출신이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월 초 강희준(姜熙俊)을 만나 서울에서 전개된 독립선언과 전국 각지에서 전개되고 있는 독립만세운동의 소식을 듣고 그 취지에 찬동하였다. 이후 3월 13일 하지경리의 천도교 전교실에 들러 3월 14일에 풍산군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일 계획을 들었다.
3월 14일 거사 당일, 그는 하지경리의 불암에서 주민을 모으고 노원리 방면에서 오는 주민 역시 가담시킨 뒤 교구장 주병남(朱炳南)을 비롯하여 천도교인 1,000여 명이 모여 있는 천도교구로 갔다. 그곳에서 연설을 들은 후, 군중들과 함께 읍내의 헌병 분견소 앞에서 분견소를 파괴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11월 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11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맹시정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3월 14일 거사 당일, 그는 하지경리의 불암에서 주민을 모으고 노원리 방면에서 오는 주민 역시 가담시킨 뒤 교구장 주병남(朱炳南)을 비롯하여 천도교인 1,000여 명이 모여 있는 천도교구로 갔다. 그곳에서 연설을 들은 후, 군중들과 함께 읍내의 헌병 분견소 앞에서 분견소를 파괴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11월 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11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맹시정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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