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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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965년 헤이룽장성 무단장 시에서 태어났다. (61세) 1982년에 헤이룽장성 대입시험에서 이과 1등을 했고 베이징대학 무선전자물리학과에 입학했다.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1990년에 중국 인민해방군에 통신병과로 입대했다.

중국의 고학력자는 군입대를 기피하는 현상이 있어서[1], 베이징대 출신이 군에 입대하자 주목을 받아 여성임에도 승진을 거듭했다.[2]

당시 중국군걸프전쟁에서 전자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았고[3], 전자통신 전문가들을 우대했는데, 리셴위도 그런 흐름을 탄 인물 중 하나였다.

리셴위는 중국군의 정보통신망을 구축하는 작업을 맡았고, 1995년에 미사일 발사훈련장을 총괄해 볼 수 있늣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후에 제2포병부대의 지휘정보 체계를 일원화한 중국검망(中國劍網)을 개발했다. 그 후 제2포병 장비연구원 최고엔지니어(工程师)를 지내던 중에 이런 공로로 2015년 8월에 중국군 장관급 장교 인사에서 대교에서 소장으로 진급하였다. 중국군 장성급 장교 500명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10여명 수준인데[4] 소수민족조선족으로 오른 것이다. 다만 기술병과 장성이라 계급장의 별이 전투병과의 5각이 아닌 6각이다.[5]

비상시의 전쟁에 대비해 병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로 파견되어 있는 것 같다. 2015년 쯤에는 중국 공산당 정협 위원이 되었다고 한다.
[1] 미군도 마찬가지다. 아이비 리그 출신들은 ROTC로 군복무를 할지라도, 의무복무기간이 끝나면 장기복무 신청은 거의 하지 않는다. 군 경력을 높이 사는 미국 형편상, 훨씬 좋은 직장에 갈 수 있기 때문.[2] 2010년대에도 베이징대학과 맞먹는 칭화대학을 졸업한 여학생이 군에 입대하자 중국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3] 실제로 걸프전은 중국군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한 전쟁이었다. 자신들의 현재 상태로는 미국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전쟁이었다.[4] 근데 한국보다는 높은 편이다. 한국군은 리셴위가 진급한 2015년 8월 기준으로 440명의 장관급 장교 가운데 3명뿐이다. 법무준장 이은수, 보병준장 김귀옥, 간호준장 최경혜 3명. 물론 으로 여성이 입대할 수 있는 중국과 여성의 병 입대가 불가능한 한국의 차이는 감안해야 한다.[5] 시진핑의 아내로 중국의 영부인펑리위안도 몇 안 되는 여군 장성인데, 원래 군공연단(문예공연단)의 사병으로 입대해서 한동안 군소속 가수로 일했다. 정확히는 정치장교 중에 정훈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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