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상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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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924년 함경북도 청진부 사구리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1938년에 청진상업보습학교, 1959년에 중앙당학교를 각각 졸업하였다. 그는 1945년 8.15 광복을 맞이한 이후에 함경북도 성진방송국 아나운서로 근무하였으며 1947년부터 평양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근무하였다.
방송생활 동안 북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 왔으며, 1960년대에 공개방송 <방송음악회>, <방송야회> 등을 진행해 주민들의 박수를 받았고,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 대표팀 경기의 현지 생중계를 진행했으며,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 개막식과 폐막식 중계를 진행하여 굵직굵직한 행사와 함께하며 전형적인 '북한 정권의 입'으로 활동해왔다. 이 타이틀은 전형규 등 후대 아나운서들에게도 전승되었다.
1966년에 인민방송원, 1984년 로력영웅 등 무수한 수훈을 받고 <방송화술론> 등을 지어 후대 아나운서들의 귀감이 되도록 했으며, 탈북 방송작가 장해성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이 썼다는 <화술론>의 실질 저자였다고도 한다.
공교롭게도 남한의 방송인인 이상벽과 동명이인이다.
방송생활 동안 북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 왔으며, 1960년대에 공개방송 <방송음악회>, <방송야회> 등을 진행해 주민들의 박수를 받았고,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 대표팀 경기의 현지 생중계를 진행했으며,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 개막식과 폐막식 중계를 진행하여 굵직굵직한 행사와 함께하며 전형적인 '북한 정권의 입'으로 활동해왔다. 이 타이틀은 전형규 등 후대 아나운서들에게도 전승되었다.
1966년에 인민방송원, 1984년 로력영웅 등 무수한 수훈을 받고 <방송화술론> 등을 지어 후대 아나운서들의 귀감이 되도록 했으며, 탈북 방송작가 장해성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이 썼다는 <화술론>의 실질 저자였다고도 한다.
공교롭게도 남한의 방송인인 이상벽과 동명이인이다.
3. 참고 자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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