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위완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중화민국의 외교관. 한자 표기는 劉馭萬, 한국 발음은 유어만. 1897~1966
2. 생애 [편집]
3. 한국에 끼친 영향 [편집]
사실은 임시정부 요인들(특히 김구)과 몹시 친하게 지냈으며 미군정, 중화민국에 임시정부를 긍정적으로 말해주었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백범 김구의 아들, 김신이 훗날 중화민국 대사가 되자 자주 방문하였다고 한다. 김신이 썼던 자서전조국의 하늘 날다'에서도 류위완과 찍은 사진이 나와있다.
4. 유어만 회담록 [편집]
여기까지 보면 김구와 임정에게만 매우 호의적인 인물이겠지만 사실 김구와 이승만 사이를 악화시키기도 했다. 그는 김구와 대화를 나눈뒤 유어만 회담록을 만들어서 이승만에게 건네주었다 한다.
유어만 회담록
당시 류위완은 장제스의 지령을 받아 김구에게 가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가하라고 말했지만 김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유어만 회담록
당시 류위완은 장제스의 지령을 받아 김구에게 가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가하라고 말했지만 김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金()김구_: 내가 (평양에서 열린) 남북한 지도자 회의에 참석한 한 가지 동기는 북한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앞으로 북한군의 확장을 3년간 중단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 남한에서 무슨 노력을 하더라도 공산군의 현재 수준에 맞서는 군대를 건설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비난을 받지 않고 아주 손쉽게 그것(주-북한군)을 南進(남진)하는 데 써먹을 것이고, 단시간에 여기서 정부가 수립될 것이며, 인민공화국이 선포될 것입니다.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이 구절을 인용해 김구가 북한을 미화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중앙일보에서 이 유어만 회담록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기존의 알려진 것과는 다른 점이 있다.김구 “소련, 북한군을 남진에 써먹을 것”… 전쟁 가능성 예견
대화록에 따르면 김구가 북한을 방문한 데는 북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고, 북한군이 남진해 단시간에 인민공화국을 선포하려 한다는 대목은 우드로윌슨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이 생각보다 위험한 존재임을 깨달았기에 언급한 것이다 한다. 아울러 김구는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
아울러 유어만과의 대담에서 김구는 정부 수립에 참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승만은 한민당의 포로나 마찬가지여서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며 민족적 중도주의론을 설파했으며, 첨언하여 미국과 중국 양국만이 한국 독립에 도움이 되는 줄 아는데, 특정 정당의 비방에 의해 반미로 몰렸기 때문에, 만일 정부 수립에 가담한다면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미국인의 동정심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될 것이라며 이와 같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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