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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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여조 추존 황제 高上祖 明皇帝 | 고상조 명황제 | ||||
고상조(高上祖) | ||||
명황제(明皇帝) | ||||
레(Lê, 黎 / 여) | ||||
호이(Hối, 誨 / 회) | ||||
황후 | 보자고명태후(普慈高明太后) | |||
생몰기간 | ????년 ~ ????년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桂堂公《大越通史》帝紀載云:曾祖諱誨,為高上明皇帝,不知自何代追尊而不入廟祀,附錄於此。역조헌장유지(歷朝憲章類誌) 〈卷二十一·禮儀誌·宗廟奉祀之禮〉
이름은 레호이(黎誨)[2]이다. 레호이의 선대는 전해지지 않으며 특이하게 묘호를 사용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2글자가 아닌 3글자로 이루어진 묘호를 받았다.
사서에 따르면 레호이는 남산을 지날 때, 좋은 땅이라 판단하고 별처(別處)에서 남산(藍山)으로 정착했다. 몇년 후 자신의 가세가 크게 발전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할 정도였으며 아들 레딘이 가장 자리를 계승할 땐 가문을 따르는 자들이 무려 천 여명에 도달했다고 한다.
후여조 건국 후 태조에 의해 묘호는 고상조(高上祖), 시호는 명황제(明皇帝)로 추존되었으며 아들 레딘[3]과 손자 레코앙[4]도 각각 현조(顯祖), 선조(宣祖)로 추존되었다. 다만 레호이는 황제로써 추존됐음에도 불구하고 따로 제사를 지내거나 하진 않았다고 한다.
사서에 따르면 레호이는 남산을 지날 때, 좋은 땅이라 판단하고 별처(別處)에서 남산(藍山)으로 정착했다. 몇년 후 자신의 가세가 크게 발전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할 정도였으며 아들 레딘이 가장 자리를 계승할 땐 가문을 따르는 자들이 무려 천 여명에 도달했다고 한다.
후여조 건국 후 태조에 의해 묘호는 고상조(高上祖), 시호는 명황제(明皇帝)로 추존되었으며 아들 레딘[3]과 손자 레코앙[4]도 각각 현조(顯祖), 선조(宣祖)로 추존되었다. 다만 레호이는 황제로써 추존됐음에도 불구하고 따로 제사를 지내거나 하진 않았다고 한다.
3. 가계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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