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궈민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름
레이궈민(雷国民)
출생
사망
사인
총살형

1. 개요 [편집]

레이궈민은 안후이성 퉁청시에서 태어났고 1992년부터 2001년까지 총 광동성, 운남성, 복건성, 강서성, 길림성, 안후이성, 장쑤성 등지에서 폭력, 협박 등의 방법으로 15건의 강도질을 벌였다. 2001년에 장쑤성 옌청시 인민검찰원은 레이궈민을 강도살인, 미성년자 강간등으로 사형을 선고하고 그 동안 강도질했던 재산을 몰수했다. 그리고 2001년 12월 28일에 총살형을 받았다.

2. 범죄경력 [편집]

광저우시 산위앤리에서 도축업으로 돈을 크게 벌은 장핑이라는 사람이 살았었는데 레이궈민은 1992년 8월 1일 새벽 1시경에 장핑과 일꾼들이 잠들었을 시간에 몰래 장핑의 집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장핑의 동생인 장요린의 목을 과도로 2번 정도 찔러서 그를 죽이고 그가 가지고 있던 10위안정도를 챙겼다. 그리고 장핑 소유의 금고로 가서 금고를 열려고 하던 찰나에 주변에서 소리가 들려서 바로 도망쳤다. 레이궈민의 첫 살인이자 강도행각인데 1명을 죽이고 10여 위안 정도를 챙겼을 뿐이였다. 여기서 레이궈민은 사람을 죽였지만 돈을 얼마 못 얻어서 1명 죽이나 여러명 죽이나 똑같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1993년 11월 8일에는 레이궈민은 저우관전이라는 사람의 집 대문 앞에서 범죄행각을 벌일 준비를 했는데 집의 여주인인 저우관전이 집문을 나서 빨래를 보러 갈 때 뒤에서 대도를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하지만 저우관전은 부상을 입고 소리를 질렀고 집안 사람들이 나오자 레이궈민은 다시 도주했다. 1993년 말에는 장윈밍이라는 여자와 사귀게 되는데 장윈밍은 총기매매로 강제노동형을 받았었다. 장윈밍은 레이궈민보다 1살 많고 범죄도 더욱 일찍 시작했었으며 레이궈민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진 않은 사람이였다. 그렇게 그 둘은 권총 두 정과 실탄 10발 정도를 구매한다.

1994년에 그 둘은 다음 강도행각을 벌일 대상을 찾고 계획을 짜기 위해 범행에 사용할 오토바이를 훔칠 생각을 한다. 장윈밍은 쿤밍시의 한 공사장에서, 레이궈민은 공사장 근처의 한 술집에서 범죄대상을 찾았다. 그 때 레이궈민은 한 사람이 오토바이를 끌고 술집쪽으로 오는걸 보았는데 그 오토바이가 자신들이 원하던 모델인줄 알고 총으로 주인을 쏴 죽이고 20위안을 얻은 후 장윈밍과 합류해서 같이 훔친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했다. 하지만 그 오토바이는 자신들이 원하던 모델이 아닌것을 알고 시동도 꺼지자 그냥 버렸다. 두달 후인 1994년 4월 초, 레이궈민과 장윈밍은 4월에만 두 번의 범죄를 일으켰는데 4월 3일 저녁 8시 쯤, 레이궈민은 혼다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던 황씨가 공터에서 내리자 그를 총으로 쏴 죽이고 20위안을 얻고, 장윈밍은 그 오토바이를 몰고 다음 목표 범행장소 근처에 오토바이를 숨겨놌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에 위앤진줘와 펑줘줸을 강도질 하려 하는데 둘이 저항하자 레이궈민은 먼저 위앤진줘를 쏴죽이고 펑줘줸도 쏴 죽이고 그들에게서 돈을 챙겨 달아났다. 그리고 얼마 안가 레이궈민은 장윈밍에게 이제 각자 살 길을 살아가자는 식으로 말을 했는데 장윈밍은 레이궈민과의 관계를 끊고 권총 두 정을 모두 챙긴채로 그를 떠났다.[1]

1995년 3월 23일 오후 4시경에 레이궈민은 중난시에서 류붜슈라는 집주인을 죽이고 10만 위안을 챙겼다. 그 일이 있고 3개월도 지나지 않아 그렇게 훔친 돈을 다 써버리는데 돈이 떨어진 그는 1995년 여름, 새벽 2시경에 주하이시 소재의 공베이 기차역에서 천이통이 운영하는 매점을 강도질하려 하지만 그에게 발각 되어 달아났다. 하지만 1년 뒤에 다시 그곳을 찾아가 2명의 당직을 죽이고 43만 위안과 10만 HK를 훔쳐서 달아났다. 43만 위안과 10만 HK라는 큰 돈을 얻었지만 레이궈민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은행의 금고를 털 계획을 하기 위해 2년간 사전답사를 했다. 1997년 9월 22일 밤중에 레이궈민은 장서성 남창시에 있는 한 은행에 들어가 당직실에 있는 제복을 훔쳐 입고 2층에 올라갔지만 많은 수의 야간당직들을 보고 겁이 나 놀라 달아났다. 하지만 1년 뒤인 1998년 7월 31일 새벽 1시경에 지린성 퉁화시의 한 은행에 또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성공적으로 15만 위안을 훔쳐왔다. 레이궈민은 두 번의 은행을 터는 경험에서 도주 시에 자신의 느린속도에 불만을 갖고 봉고차를 구하려 했다. 2000년 8월 5일 저녁 9시경 레이궈민은 봉고차를 구매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안후이성 쑤저우시에 있는 은행을 찾아가 날이 어두워지기 기다린 다음에 날이 어두워지자 절단펜치로 주임실의 창문을 뚫고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은행에 있던 야간당직인 쉐위전, 쉬위펀이 소리를 듣고 접근해 오자 레이궈민은 그 둘을 죽이고 금고를 1차로 털어서 4만 위안, 2차로 18.8만 위안을 훔쳤다. 반년 후에 레이궈민은 3만 위안으로 그토록 원하던 봉고차를 구매했다.

2001년 2월, 장시성 루이창시에서 은행을 털 계획을 하는데 이미 그런 행위에 익숙한 레이궈민은 범행목표의 은행금고 열쇠를 해당 은행 경비원인 저우셩중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2월 21일 오후 4시경에 레이궈민은 저우셩중의 집 근처에 차를 세우고 저우셩중이 그의 모친과 그의 딸과 함께 집에 들어갈 때 그들을 습격해서 죽이고 저우셩중의 막내 딸을 보고 그녀를 강간했다. 그 후에 다시 범행목표의 은행으로 가려하지만 저우셩중의 집에서 떠날 때 저우셩중의 동생을 마주쳐서 은행을 터는 계획을 포기한다. 하지만 2달 후에 장쑤성 옌청시에서 은행을 털 계획을 세운다. 2001년 4월 15일 레이궈민은 옌청시의 한 은행을 털게 되는데 직원 3명을 죽이고 금고를 열어서 260만 위안의 현금을 챙겼다. 옌청시의 모든 경찰들이 현장에 투입 되었고 국도를 봉쇄하는 등 적극적으로 레이궈민을 체포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끈질긴 추격 끝에 2001년 6월 15일 레이궈민은 션전시 기차역에서 붙잡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 8월 22일, 난징에서 옌칭으로 호송되고 8월 24일에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오자 레이궈민은 이를 인정하며 형사들을 그의 행적을 따라 그가 벌인 모든 범행을 밝혀냈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레이궈민은 불공평과 사회제도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며 스스로를 변호하지만 소용은 없었다.

3. 판결 [편집]

2001년 11월 9월에 레이궈민은 미성년자 강간, 그 동안의 강도살인행각 등으로 사형을 면치 못하게 되고 그가 그동안 강도행각으로 벌어온 돈들은 압수했다. 2001년 12월 28일 레이궈민은 총살형을 받게 된다.
[1] 장윈밍은 1994년 말에 충칭시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또 비슷한 범행을 저지르다 체포되는데 마약소지, 강도등의 범죄로 1995년에 사형을 선고 받고 사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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