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푸엔테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라푸엔테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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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라몬 데라푸엔테 레알 (Ramón de La Fuente Leal) |
생년월일 | |
사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
포지션 |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 |
신체조건 | 불명 |
등번호 | -[1] |
소속팀 | |
국가대표 | 8경기 / 0골 (1927-1935) |
소속팀 |
1. 생애[2] [편집]
1.1. 축구 선수 [편집]
1.1.1. 클럽 [편집]
빌바오에서 태어난 라몬 데라푸엔테 레알(Ramón de La Fuente Leal)은 라푸엔테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라푸엔테는 16살이 되던 1923년, 바라칼도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1926년에는 아틀레틱 클루브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라푸엔테는 기예르모 고로스티사, 호세 이라라고리 등과 스페인 최고 수준의 공격진을 구성했고 그에 걸맞게 아틀레틱 클루브는 이 시기에 리그 3회 우승, 코파 델 레이 4회 우승 등 라리가 초창기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우뚝 섰다. 라푸엔테는 6시즌 동안 211회의 공식 경기[3]에서 64득점[4]을 넣으며 당시 빌바오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라푸엔테는 1934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다소 페이스가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1935년 코파 델 프레지덴테 데라레푸블리카 8강전에서 라푸엔테는 세비야 FC의 골키퍼 기예르모 에이사기레와 충돌, 다리 경골과 비골의 이중골절[5]로 이듬해까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스페인 내전까지 터졌고 라푸엔테는 선수 은퇴를 결정했다.
라푸엔테는 기예르모 고로스티사, 호세 이라라고리 등과 스페인 최고 수준의 공격진을 구성했고 그에 걸맞게 아틀레틱 클루브는 이 시기에 리그 3회 우승, 코파 델 레이 4회 우승 등 라리가 초창기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우뚝 섰다. 라푸엔테는 6시즌 동안 211회의 공식 경기[3]에서 64득점[4]을 넣으며 당시 빌바오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라푸엔테는 1934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다소 페이스가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1935년 코파 델 프레지덴테 데라레푸블리카 8강전에서 라푸엔테는 세비야 FC의 골키퍼 기예르모 에이사기레와 충돌, 다리 경골과 비골의 이중골절[5]로 이듬해까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스페인 내전까지 터졌고 라푸엔테는 선수 은퇴를 결정했다.
1.1.2. 국가대표 [편집]
1.2. 감독 [편집]
1940-41 시즌에 라푸엔테는 리카르도 사모라가 구금되어 공석이 된 아틀레티코 아비아시온의 감독을 맡아 10경기를 소화했고 5승 4무 1패의 기록을 남겼다.
그 이후 1943년부터 2년간 데포르티보의 감독을 맡았다.
그 이후 1943년부터 2년간 데포르티보의 감독을 맡았다.
2. 수상 [편집]
2.1. 클럽 [편집]
- 코파 델 레이 우승 4회: 1930, 1931, 1932, 1933(아틀레틱 클루브)
-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2회: 1931–32, 1932–33(아틀레틱 클루브)
- 바스크 챔피언십 우승 6회: 1927–28, 1928–29, 1930–31, 1931–32, 1932–33, 1933–34(아틀레틱 클루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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