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남역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라남역 | ||
다국어 표기 | ||
Ranam | ||
羅南 | ||
罗南 | ||
ラナム | ||
주소 | ||
관리역 등급 | ||
불명 (청진철도총국) | ||
운영 기관 | ||
개업일 | ||
1919년 12월 10일 | ||
철도거리표 | ||
평라선 라 남 | ||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정확한 소재를 표기하기가 어려운 게, 청진시에 난립해 있는 하위 행정구역이 7구 93동 14리이다. 게다가 너무 동이 자잘하게 나뉘어 있어서 찾기가 무진장 어렵다(단, 광복 당시에는 나남본동에 속했다).
일제강점기시절, 이 지역은 한국에 주둔한 일본군 2개 사단중 하나인 19사단의 본거지 및 주력이 주둔하는 곳으로,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0년대 근방부터 계획적인 시가지 및 주둔지를 건설한 곳이다. 게다가 그 규모도 커서 거의 옛 진해시 수준이었다고 한다.[1] 그래서 이 곳 나남읍이 경성 대신 함경북도의 도청 소재지가 되었고, 1940년 청진에 편입된 이후에도 이 곳에 계속 도청이 남아 있었다.
참고로, 또 하나의 한국 주둔 일본군 사단인 20사단은 본거지가 용산역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 주둔 일본군의 2대 중심지였다는 것.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당시에는 나남시라는 독립된 행정구역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걸 청진시에 편입시키면서 나남구역이 되었다. 이 때 편입된 이후로 단 한번도 폐지된 적이 없는 구역. 이 나남구역에서 현재 관할하는 하위 행정구역은 19동 2리이다.
역세권이 청진시답게 상당히 커서, 이 조그만 구역의 중심부가 어째 북청읍 전체와 비슷한 수준이다. 과연 한때 직할시였던 청진답고, 한때 도청 소재지였던 나남구역답다. 그래서 그런지 아예 이 중심부를 남청진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부르기도 할 정도.
평양역 기점 706.1km.
일제강점기시절, 이 지역은 한국에 주둔한 일본군 2개 사단중 하나인 19사단의 본거지 및 주력이 주둔하는 곳으로,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0년대 근방부터 계획적인 시가지 및 주둔지를 건설한 곳이다. 게다가 그 규모도 커서 거의 옛 진해시 수준이었다고 한다.[1] 그래서 이 곳 나남읍이 경성 대신 함경북도의 도청 소재지가 되었고, 1940년 청진에 편입된 이후에도 이 곳에 계속 도청이 남아 있었다.
참고로, 또 하나의 한국 주둔 일본군 사단인 20사단은 본거지가 용산역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 주둔 일본군의 2대 중심지였다는 것.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당시에는 나남시라는 독립된 행정구역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걸 청진시에 편입시키면서 나남구역이 되었다. 이 때 편입된 이후로 단 한번도 폐지된 적이 없는 구역. 이 나남구역에서 현재 관할하는 하위 행정구역은 19동 2리이다.
역세권이 청진시답게 상당히 커서, 이 조그만 구역의 중심부가 어째 북청읍 전체와 비슷한 수준이다. 과연 한때 직할시였던 청진답고, 한때 도청 소재지였던 나남구역답다. 그래서 그런지 아예 이 중심부를 남청진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부르기도 할 정도.
평양역 기점 706.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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