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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鄧彪
등표
관내후(關內侯)
태부(太傅) 겸 녹상서사(錄尙書事)
(鄧)
(彪)
아버지
등한(鄧邯)
지백(智伯)
생몰 기간
음력:?년 ~ 93년 2월
양력:?년 ~ 93년 4월 5일
고향
형주(荊州) 남양군(南陽郡) 신야현(新野縣)
재임기간
태위 재임기간
81년 7월 22일 ~ 84년
태부 재임기간
88년 3월 18일 ~ 94년 2월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후한의 관리. 자는 지백(智伯), 남양군 신야현 출신, 아버지는 등한(鄧邯)[1]의 장남

2. 생애 [편집]

등표는 어렸을 때부터 효를 갈고 닦았다. 이른말로 수신(修身)하였다.

원래는 장남이라서 제후직을 이어받아야 하지만 등표는 거절하고 이복동생인 등형(鄧荊)과 등봉(鄧鳳)에게 주고 싶다고 말하였다. 이를 본 한명제는 등표의 품성이 고상하다고 생각해 조서를 내려 동의를 내렸다.

이후 등표는 주군(州郡, 형주)에서 관리를 지내다 공부(公府)를 거쳐 계양태수(桂陽太守)가 되었다.

74년 태복(太僕)으로 승진하였다. 몇년 후 어머니가 죽자 사직하고 낙향하지만 얼마안가 조서가 내려와 광록대부행(光祿大夫行)를 이어 봉차도위(奉車都尉), 대사농(大司農)이 되었다.

81년 7월 22일 포욱(鮑昱)에 뒤를 이어서 태위가 되었다. 태위(太尉)를 지내는 동안 등표는 청결하여 백관(百官)의 모범이었다.

84년 태위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30만 전과 녹봉 2천석을 받았다.

한화제가 즉위하면서 태부(太傅) 겸 녹상서사(錄尙書事)에 임명되고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

89년 외척인 두씨(竇氏)가문이 방종하여 조정에 여러사람이 간언을 하였지만, 등표는 그저 태부 자리를 지킬뿐 두씨집안에게 별다른 제재는 하지 않았다. 이 일과 이전에 어사중승(御史中丞) 주우(周紆)를 탄핵했던 일 때문에 등표는 세간에 몇몇 사람으로부터 조롱을 들어야 했다.

94년 2월 사망하였다.
[1] 광무제 초 공을 세워 면후(黽侯)로 봉해지고 발해태수로 봉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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