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병철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도병철은 1903년 1월 20일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현 덕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3.1 운동 당시 칠곡군에서 발생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지만 당시 16살이었기에 연소자라는 이유로 석방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수립되자 이를 돕기 위해 손병선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에 힘을 쏟았으며, 1927년 2월에 신간회가 결성되자 그해 4월에 동지들과 함께 신간회 칠곡군 지부를 조직했다.
그는 주로 민족교육운동에 관심을 갖고 야학 교사로서 무산자 아동의 수업료 면제와 민족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던 1931년 신간회가 해소되자, 그는 옛 동지 손병선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수행하다가 1938년에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0년 6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구류 처분되었다.
이후 1945년 8월 일제가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의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체포된 그는 연행 도중이던 8월 7일에 낙동강 철교에서 투신자살했다. 향년 42세. 그로부터 8일 뒤에 8.15 광복이 도래한 점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라 하겠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도병철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는 주로 민족교육운동에 관심을 갖고 야학 교사로서 무산자 아동의 수업료 면제와 민족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던 1931년 신간회가 해소되자, 그는 옛 동지 손병선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수행하다가 1938년에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0년 6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구류 처분되었다.
이후 1945년 8월 일제가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의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체포된 그는 연행 도중이던 8월 7일에 낙동강 철교에서 투신자살했다. 향년 42세. 그로부터 8일 뒤에 8.15 광복이 도래한 점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라 하겠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도병철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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