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미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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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헬레니즘/로마 시대에는 타미아티스 (Tamiathis)라고 불렸다. 642년 경에 라쉬둔 칼리파 조에게 점령되었는데, 이에 동로마 제국은 수 차례[1] 도시를 되찾으려 하였으나 853년 5월에 일시적으로 함락한 것 말고는 모두 실패하였다. 우마이야, 압바스, 툴룬 왕조 시대에 다미에타는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이집트를 대표하는 항구였다. 1169년에는 동로마, 예루살렘 왕국의 연합군의 침공을 받았으나 살라딘 휘하의 수비군에게 패하였다.
십자군 기간인 1200년경 다미에타는 3중 성벽과 28개의 탑을 갖추었고 거기에 해자와 외곽 요새까지 더해져 난공불락의 명성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5차 십자군과 7차 십자군 기에 도시는 심하게 파괴되었고, 이후 프랑스의 루이 9세가 또다른 십자군을 준비한다는 말을 듣자 이골이 난 맘루크 왕조의 바이바르스는 항구를 파괴해 버렸다. 다만 13세기 이후 재건되어 현재에 이른다.
십자군 기간인 1200년경 다미에타는 3중 성벽과 28개의 탑을 갖추었고 거기에 해자와 외곽 요새까지 더해져 난공불락의 명성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5차 십자군과 7차 십자군 기에 도시는 심하게 파괴되었고, 이후 프랑스의 루이 9세가 또다른 십자군을 준비한다는 말을 듣자 이골이 난 맘루크 왕조의 바이바르스는 항구를 파괴해 버렸다. 다만 13세기 이후 재건되어 현재에 이른다.
[1] 739년, 821년, 853년, 921년, 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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