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수(후한)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婁壽
(97 ~ 174)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원고(元考).

증조부는 오관중랑장에게 춘추를 강의했으며, 조부는 태상박사, 주작사마, 아버지는 가난을 고수해 벼슬하지 않았다.

남양 사람으로 어릴 때부터 뜻이 있어 재주를 가지면서 학문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어 학식이 깊었으며, 여러 관부에 불렀지만 부름에 응하지 않고 은거해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을 즐겼다. 그가 사망한 후에는 문하에서 현유선생(玄儒先生)이라 불렀으며, 이 때 있던 58인은 그가 오랫동안 사귄 친구로 모두 관리를 지낸 적이 없지만 학식이 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금을 모아 비석을 세웠으며,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현유선생누수비에는 누수가 남양군 융현 사람이라고 되어있는 것으로 인해 같은 남양군 출신인 누규가 있어 누씨가 남양군에서 살았다는 추측도 있으며, 또한 융현 사람이라고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남양군 뿐만 아니라 형주 전체도 융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속현이 없기 때문에 의문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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