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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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노헌용은 1868년 9월 1일 황해도 곡산군에서 부친 노동우(盧東虞)와 모친 박동엽(朴東燁)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도교에 입교한 뒤 경기도 경성부 화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으로 이주했고, 천도교 총본부 금융관장을 맡았다. 그러던 1919년 2월 말 손병희와 회합하여 독립만세운동에 관한 취지를 듣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다가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행적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서훈이 미뤄졌다. 그러다가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행적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서훈이 미뤄졌다. 그러다가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 광주군계 29세손 용(容) 희(喜) 렬(烈) 항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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