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영(1902)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 남태영(南太榮) |
본관 | |
생몰 | |
사망지 | |
추서 | 건국포장 |
남태영은 1902년 7월 27일 경상북도 풍기군 하리면(현 예천군 은풍면) 부초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농민들이 어렵게 사는 것을 지켜보며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농촌 문제에서 접근해 농민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으며, 예천군 소작쟁의를 주도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1926년 10월 2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본으로 유학간 그는 1928년 8월경 귀국하던 중 덴노를 '암살'한다는 내용의 투서를 일본 경도경찰서 앞으로 보냈다가 국내에서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1928년 9월 26일 송치되어 고초를 치르다가 1929년 3월 24일 예심면소(豫審免訴)를 받기까지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예천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91년 1월 2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남태영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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