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영(1873)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명 | 남적영(南赤永) |
본관 | |
출생 | |
사망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남태영은 1873년 3월 28일 강원도 울진현 원북면 하당(현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서 아버지 남치영(南致營)[2]과 어머니 남양 홍씨 홍규헌(洪奎憲)의 딸 사이의 두 아들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울진군 서면 쌍전동(현 금강송면 쌍전리)으로 이주하였다.
1905년 울진군 서면에서 의병을 모집해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장비를 정비하고 1906년 서울을 향해 진격하던 중, 봉화군 소천면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인 끝에 10여 명에 부상을 입혔다. 이듬해에는 봉화에서 권용하(權龍夏)[3] 등과 함께 의병 500명을 모은 뒤 영양, 청송, 영덕, 풍기 등지를 전전하며 일본군과 항전했다. 그러나 1907년 말 일본군에게 체포된 후 1908년 5월 29일에 총살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남태영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울진군은 2007년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의병장 남태영 선생의 기념비를 건립했다. 영양 남씨 송정공파 종친회는 2007년부터 매년 남태영 의병장 숭모회를 거행하고 있다.
1905년 울진군 서면에서 의병을 모집해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장비를 정비하고 1906년 서울을 향해 진격하던 중, 봉화군 소천면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인 끝에 10여 명에 부상을 입혔다. 이듬해에는 봉화에서 권용하(權龍夏)[3] 등과 함께 의병 500명을 모은 뒤 영양, 청송, 영덕, 풍기 등지를 전전하며 일본군과 항전했다. 그러나 1907년 말 일본군에게 체포된 후 1908년 5월 29일에 총살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남태영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울진군은 2007년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의병장 남태영 선생의 기념비를 건립했다. 영양 남씨 송정공파 종친회는 2007년부터 매년 남태영 의병장 숭모회를 거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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