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병표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자 / 호 | 여문(汝文) / 지산(芝山) |
본관 | |
출생 | |
사망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상훈 | 대통령표창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남병표는 1894년 8월 27일 강원도 울진현 원북면 고등동(현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지정골)에서 아버지 남유익(南有翊)과 어머니 담양 전씨 전상환(田相煥)의 딸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3일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서 김일수(金一壽)·김재수(金在壽)등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대형기와 태극기를 준비하여 장터에 모인 50여명의 시위군중에게 배부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울진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울진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5년 2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남병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4년 울진군 북면 고목리 가치산(加峙山)에 묻혀있던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그는 1919년 4월 13일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서 김일수(金一壽)·김재수(金在壽)등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대형기와 태극기를 준비하여 장터에 모인 50여명의 시위군중에게 배부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울진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울진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5년 2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남병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4년 울진군 북면 고목리 가치산(加峙山)에 묻혀있던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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