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바위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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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엄', '난이'라고도 한다. 민간에서는 수달 가죽을 사용했으나 못사는 서민들은 값이 비싸서 족제비 가죽을 사용했다. 또, 노인이나 어린이 그리고 허약한 사람들은 봄철이나 가을에도 착용하는 춘추(春秋) 남바위도 있다. 남녀 공동모자로 풍뎅이 또는 휘양이라고도 불렸다.
남바위는 위가 뚫려 있는 경우가 많은데 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 하라는 조상님들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속에는 털이 붙은 가죽을 대고 겉은 비단 등의 천으로 만들고, 앞은 이마를 덮고 뒤는 귀를 거쳐 목과 등을 덮으며, 위쪽에는 구멍을 뚫었다. 부인용에는 수(繡) ·구슬 등 장식을 달았는데, 조바위 ·아얌은 이것이 변형된 것이다. 지금은 쓰는 사람이 거의 없으나, 예전에는 부인과 노인들이 주로 착용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문신과 무신도 사모 아래에 썼다.[1] 고종황제의 사진 중에도 겨울에 익선관 아래에 남바위를 쓴 사진이 남아있다.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 『관조(冠條)』에 의하면 당상관용(堂上官用)은 단(段) ·담비가죽[貂皮]으로 하고, 3~9품은 초와 쥐가죽으로 한다고 쓰여 있다.
'이엄', '난이'라고도 한다. 민간에서는 수달 가죽을 사용했으나 못사는 서민들은 값이 비싸서 족제비 가죽을 사용했다. 또, 노인이나 어린이 그리고 허약한 사람들은 봄철이나 가을에도 착용하는 춘추(春秋) 남바위도 있다. 남녀 공동모자로 풍뎅이 또는 휘양이라고도 불렸다.
남바위는 위가 뚫려 있는 경우가 많은데 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 하라는 조상님들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속에는 털이 붙은 가죽을 대고 겉은 비단 등의 천으로 만들고, 앞은 이마를 덮고 뒤는 귀를 거쳐 목과 등을 덮으며, 위쪽에는 구멍을 뚫었다. 부인용에는 수(繡) ·구슬 등 장식을 달았는데, 조바위 ·아얌은 이것이 변형된 것이다. 지금은 쓰는 사람이 거의 없으나, 예전에는 부인과 노인들이 주로 착용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문신과 무신도 사모 아래에 썼다.[1] 고종황제의 사진 중에도 겨울에 익선관 아래에 남바위를 쓴 사진이 남아있다.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 『관조(冠條)』에 의하면 당상관용(堂上官用)은 단(段) ·담비가죽[貂皮]으로 하고, 3~9품은 초와 쥐가죽으로 한다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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